네 가지 실재, 하나의 지도『아비담맛타상가하』를 펼치며 — 아비담마는 무엇을, 어떻게 세는가
아비담마(abhidhamma)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이나 ‘나’, ‘중생’ 같은 일상의 말로 전하는 대신, 우리가 겪는 경험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까지 나누고, 그 단위들을 세고, 분류하고, 서로 맺는 관계를 밝혀 보이는 가르침입니다. 이 연재는 테라와다 전통에서 아비담마 공부의 첫 관문으로 읽혀 온 아누룻다 스승의 『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matthasaṅgaha)』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씩 따라 읽습니다. 첫 편에서는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도를 펼칩니다. 아비담마라는 이름의 뜻, 논장 일곱 권과 이 개요서의 관계, 관습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의 구분, 이 책 전체를 떠받치는 네 가지 궁극적 실재를 차례로 살핀 뒤, 제1장이 세어 나갈 89가지 마음의 전체 지형을 한 장의 격자로 그려 봅니다.
상가하의 얀뜨라. 바깥 고리의 눈금 89개는 마음, 둘째 고리의 점 52개는 마음부수, 셋째 고리의 네모 28개는 물질, 한가운데의 한 점은 열반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이 네 고리 안에 들어옵니다.
욕계 마음 54
색계 15
무색계 12
출세간 8
1
아비담마라는 이름
전거: 제1장 §1의 주석(나라다 편역본), 편역자 서문
아비담마(abhidhamma)는 접두사 abhi와 명사 dhamma가 합쳐진 말입니다. dhamma는 ‘지니다, 떠받치다’를 뜻하는 어근 √dhar에서 나온, 불교 용어 가운데서도 가장 뜻이 넓은 말입니다. 가르침, 진리, 현상, 법칙을 두루 가리킬 수 있는데, 이 복합어에서는 무엇보다 ‘가르침(교법)’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 이름을 이해하는 관건은 앞에 붙은 abhi를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상가하』 첫 게송에 붙은 주석은 논장의 주석서인 『앗타살리니(Atthasālinī)』를 따라 이 abhi를 두 갈래로 풉니다. 하나는 atireka, 곧 ‘더 높은, 넘어서는, 뛰어넘는’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visiṭṭha, 곧 ‘특별한, 구별되는, 빼어난’이라는 뜻입니다. 접두사 abhi 자체도 ‘우세한, 큰, 뛰어난, 숭고한, 뚜렷이 구별되는’ 같은 뜻으로 두루 쓰인다고 합니다.
이 두 풀이로부터 아비담마라는 이름의 근거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이 가르침은 해탈을 이루게 해 주기 때문에, 혹은 경장과 율장의 가르침을 그 양에서 넘어설 만큼 풍부하기 때문에 ‘더 높은 법’입니다. 둘째, 이 가르침은 다루는 방식이 구별되기 때문에 ‘특별한 법’입니다. 경장과 율장에서 부처님은 사람, 동물, 중생 같은 관습적인 말을 쓰셨지만, 논장에서는 모든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잘게 나누어 분석하고, 그 결과를 추상적인 술어로 적습니다. 셋째, 이 둘을 합하여, 가르침의 풍부함과 해탈로 이끄는 힘, 그리고 빼어난 분석의 방법 때문에 아비담마라고 불립니다.
경은 관습의 언어로, 논은 궁극의 언어로
편역자 나라다 장로는 서문에서 이 차이를 한 쌍의 술어로 요약합니다. 경장에 담긴 가르침은 vohāra-desanā, 곧 세간의 말하는 방식을 따르는 ‘관습적 가르침’이고, 아비담마는 paramattha-desanā, 곧 궁극적 실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궁극적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이 낮고 논이 높다는 우열의 구분이 아닙니다. 같은 진리를 두 가지 언어로 말한다는 방법의 구분이며, 이 구분은 이 편의 넷째 절에서 ‘두 가지 진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나라다 장로는 아비담마를 현대 심리학과 견주면서도 분명한 선을 긋습니다. 아비담마는 마음과 생각, 생각이 흘러가는 과정, 마음의 여러 상태를 다룬다는 점에서 심리학과 영역이 겹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영혼이나 자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장로의 표현을 빌리면 불교는 처음부터 ‘심혼(心魂) 없는 심리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동시에 장로는 아비담마를 현대 심리학 교과서처럼 읽으면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아비담마는 마음과 물질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이 둘을 탐구하며, 해탈과 관계없는 문제는 일부러 제쳐 둡니다. 물리학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이 아비담마를 파고들 이유는 없다는 장로의 말도 같은 뜻입니다.
책 이름을 쪼개어 읽기
이 책의 이름 역시 세 조각으로 나뉩니다. 주석에 따르면 attha는 여기서 ‘의미’가 아니라 ‘것, 사물’을 뜻하고, saṅgaha는 ‘모아서 간추린 것, 개요’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아비담맛타상가하』는 ‘아비담마에 담긴 것들의 개요’, 곧 논장 전체에서 다루는 법들을 한 권에 모아 간추린 책이라는 이름입니다.
abhidhamma명사 · 복합어 앞 요소아비담마, 더 높은/특별한 가르침
attha명사 · ‘것, 사물’의 뜻(그 안에서 다루어지는) 것들
saṅgaha명사 · saṃ + √gah ‘함께 붙잡다’모음, 개요, 간추림
2
일곱 논서와 한 권의 개요서
전거: 제1장 §1의 주석, 편역자 서문, 책 끝의 발원 게송(nigamana)
『상가하』가 ‘개요’라면, 그것이 간추리는 원본은 빠알리 삼장 가운데 셋째 바구니인 논장(Abhidhamma-piṭaka)입니다. 논장은 일곱 권의 논서로 이루어져 있고, 전통은 그 일곱 권의 이름을 한 수의 게송으로 외워 전합니다.
Dhammasaṅgaṇī vibhaṅgañ cakathāvatthu ca puggalaṃ,dhātu-yamaka-paṭṭhānaṃabhidhammo ti vuccati.
담마상가니와 위방가, 까타왓투와 뿍갈라(빤냣띠), 다뚜(까타)와 야마까와 빳타나, 이것을 아비담마라고 한다.
— 제1장 §1 주석에 인용된 기억 게송
게송은 운율을 맞추느라 순서를 바꾸고 이름을 줄여 부릅니다. 주석이 소개하는 차례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습니다. ‘바나와라(bhāṇavāra)’는 암송의 분량을 재는 단위로, 250게에 한 게가 네 구, 한 구가 여덟 음절이므로 한 바나와라는 8,000자에 해당합니다.
순서
논서
뜻
짜임과 내용
분량
1
담마상가니 Dhammasaṅgaṇī
법의 분류
마음·물질·요약·해설의 네 장. 논장의 정수인 세 쌍 논모 22개와 두 쌍 논모 100개를 풀이하며, 대부분을 첫 세 쌍인 ‘유익한 법, 해로운 법, 결정되지 않은 법’의 설명에 바친다.
13 이상
2
위방가 Vibhaṅga
분별
열여덟 분별. 무더기·감각장소·요소를 다루는 앞의 셋이 가장 중요하며, 진리·기능·연기·마음챙김의 확립·선정·도 등이 이어진다. 대부분 ‘경에 따른 설명, 아비담마에 따른 설명, 문답’의 세 부분으로 짜인다.
35
3
다뚜까타 Dhātukathā
요소에 대한 논의
법들이 무더기·감각장소·요소에 포함되는지, 결합하는지를 묻는다. 열네 장.
6 이상
4
뿍갈라빤냣띠 Puggalapaññatti
개인의 개념
법 대신 여러 유형의 사람을 다룬다. 한 명, 두 명, 세 명씩 묶어 가는 방식이 앙굿따라 니까야를 닮았다. 열 장.
5 이상
5
까타왓투 Kathāvatthu
논쟁의 요점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의 저술로 전하며, 빠딸리뿟따의 제3결집에서 논장에 들어갔다. 216개의 논쟁을 23장으로 다룬다.
디가 니까야 정도
6
야마까 Yamaka
쌍(雙)
하나의 질문과 그 역(逆)을 짝지어 묻는다. 예컨대 “유익한 법은 모두 유익한 뿌리인가? 유익한 뿌리는 모두 유익한 법인가?” 뿌리·무더기·감각장소·요소·진리·형성·잠재성향·마음·법·기능의 열 장.
120
7
빳타나 Paṭṭhāna
조건 관계
24가지 조건 관계를 담마상가니의 세 쌍·두 쌍 논모에 적용한다. ‘큰 논서(Mahāpakaraṇa)’라 불리며 일곱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방대하다.
가장 방대
표 1. 논장의 일곱 논서. 분량은 바나와라 단위이며, 나라다 장로의 주석에 수치가 적힌 것만 숫자로 옮겼습니다.
그림 1. 바나와라로 잰 논서의 분량. 가장 짧은 뿍갈라빤냣띠와 야마까 사이에 스물네 배의 차이가 있습니다. 수치가 기록되지 않은 까타왓투와 빳타나는 점선으로만 자리를 표시했습니다.
논장은 누가 설했는가
전통의 설명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천상에 태어난 어머니에게 은혜를 갚는 뜻으로 어머니인 천신과 다른 천신들에게 석 달 동안 쉬지 않고 아비담마를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익한 법, 해로운 법, 결정되지 않은 법’과 같은 이 가르침의 주요 항목들, 곧 논모(mātikā)를 사리뿟따 존자에게 가르치셨고, 존자가 이를 자세히 풀어 까타왓투를 뺀 여섯 논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까타왓투가 따로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의 저술로 전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나라다 장로는 아비담마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후대 학승들이 다듬어 낸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통은 그 핵심을 부처님께 돌린다는 점을 함께 적고, 저자가 누구였든 부처님께 비길 만한 지적 천재였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여러 조건 관계를 치밀하게 서술한 빳타나를 보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주석서 『앗타살리니』는 부처님께서 앞의 여섯 논서를 숙고하실 때와 달리, 빳타나의 24가지 보편적 조건 관계를 숙고하기 시작하셨을 때 비로소 그 일체지가 온전히 펼쳐질 자리를 얻었다고 전합니다. 이 연재는 이 문제에 대해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상가하』가 전하는 체계를 그 내적 논리에 따라 정확히 읽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아누룻다 스승과 『상가하』
『아비담맛타상가하』는 남인도 깐찌뿌라(Kāñcipura) 출신의 아누룻다(Anuruddha) 장로가 지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나라다 장로는 이 책이 논장 전체의 개요를 제공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비담마로 들어가는 가장 알맞은 입문서라고 평가합니다. 이 책을 익히면 아비담마의 전반적인 지식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아비담마에 통달하려면 일곱 논서 전체를 주석서, 복주석서와 함께 인내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거듭 읽어야 한다고도 덧붙입니다. 『상가하』는 지도이지 땅 자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책의 맨 끝에는 저술의 경위를 밝히는 게송 두 수가 있습니다. 행실이 빼어나고 믿음과 덕을 갖춘 좋은 가문의 남바(Namba)라는 이가 다른 이들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간청하여 이 논서가 완성되었으며, 이 공덕으로 지혜로 청정하고 계율로 빛나는 겸손한 비구들이 세상 끝날 때까지 뚜물라소마(Tumūlasoma) 승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책은 이렇게 닫힙니다.
『상가하』는 아홉 장(pariccheda)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의 끝마다 “『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 ○○의 개요를 분별하는 것이라는 제○장”이라는 맺음말이 붙습니다. 아홉 장의 이름과 내용을 한눈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른쪽 열은 이 연재에서 각 장을 다룰 편입니다.
장
빠알리 장 이름
주제
주요 내용
연재
I
Cittasaṅgahavibhāga
마음
89가지(또는 121가지) 마음의 분류
1–6편
II
Cetasikasaṅgahavibhāga
마음부수
52가지 마음부수와 그것들이 마음과 결합하고 조합되는 방식
7–8편
III
Pakiṇṇakasaṅgahavibhāga
여러 가지 항목
느낌·원인·역할·문·대상·토대에 따른 마음의 재분류
9편
IV
Vīthisaṅgahavibhāga
인식과정
다섯 감각의 문과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
10–11편
V
Vīthimuttasaṅgahavibhāga
인식과정을 벗어난 것
존재의 세계, 재생연결, 업, 죽음과 다시 태어남
12편
VI
Rūpasaṅgahavibhāga
물질
28가지 물질의 열거·분류·생성·무리, 그리고 열반
13편
VII
Samuccayasaṅgahavibhāga
범주의 모음
해로운 범주, 섞인 범주, 깨달음의 편에 속하는 법, 전체의 모음
14편
VIII
Paccayasaṅgahavibhāga
조건
연기의 방법과 빳타나의 방법, 그리고 개념(빤냣띠)
15편
IX
Kammaṭṭhānasaṅgahavibhāga
명상주제
사마타와 위빳사나, 청정의 단계, 해탈
16편
표 2. 『상가하』 아홉 장의 짜임. 앞의 다섯 장은 네 실재 가운데 마음과 마음부수를, 제6장은 물질과 열반을 다루고, 뒤의 세 장은 이것들을 다시 엮고, 관계 짓고, 수행에 적용합니다.
3
첫 게송, 삼보에 대한 예경
전거: 제1장 §1
나라다 장로의 편역본은 본문 앞에 “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 귀의합니다(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를 먼저 새기고, 이어 다음과 같은 첫 게송으로 책을 엽니다. 빠알리 논서들은 대개 이처럼 삼보에 예경하고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밝히는 게송으로 시작합니다.
견줄 데 없는 정등각자께, 바른 법과 으뜸가는 무리[승가]와 함께 예경하고서, 나는 아비담마에 담긴 것들의 개요를 말하리라.
— 제1장 §1
sammāsambuddhaṃ남성 대격 · 예경의 대상바르게 스스로 완전히 깨달은 분을
atulaṃ형용사 대격 · a + tula저울질할 수 없는, 견줄 데 없는
sa-saddhamma-gaṇ-uttamaṃ복합어 대격 · sa ‘함께’ + saddhamma ‘바른 법’ + gaṇa ‘무리’ + uttama ‘으뜸’바른 법 및 으뜸가는 무리와 함께하는 (분을)
abhivādiya절대분사 · ‘~하고 나서’예경하고서
bhāsissaṃ미래 1인칭 단수나는 말하리라
abhidhammattha-saṅgahaṃ복합어 대격 · 말할 내용아비담마의 것들에 대한 개요를
둘째 구의 긴 복합어가 이 게송의 문법적 요점입니다. 맨 앞의 sa-는 ‘~과 함께’라는 뜻의 접두 요소여서, 복합어 전체가 앞의 sammāsambuddhaṃ을 꾸미며 ‘바른 법과 으뜸가는 무리를 함께 거느린 정등각자를’이라는 뜻이 됩니다. 한 번의 예경 안에 붓다, 담마, 상가의 삼보가 모두 들어 있는 셈입니다. 모든 명사와 형용사가 대격 어미 -ṃ으로 끝나는 것은 이들이 모두 절대분사 abhivādiya의 목적어, 곧 예경을 받는 대상이기 때문이고, 마지막 구의 abhidhammatthasaṅgahaṃ은 미래형 동사 bhāsissaṃ의 목적어로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밝힙니다. 주석은 이 마지막 구를 ‘간결하게’ 말하겠다는 다짐으로 새기는데, 방대한 일곱 논서를 간추리겠다는 저술의 성격이 이 한 줄에 드러나 있습니다.
읽기의 요령
이 연재에서는 『상가하』의 게송과 본문을 가능한 한 빠알리 원문으로 함께 읽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격자 칸에 적힌 품사와 격 표시를 따라 한 번씩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이 책의 술어들은 거의 모두 합성어로 되어 있어서, 합성어를 쪼갤 줄 알면 개념의 절반을 이미 이해한 것과 같습니다.
4
두 가지 진리
전거: 제1장 §2의 주석, 제8장 개념(paññatti)의 구분
아비담마로 들어가는 문턱에서 반드시 먼저 익혀야 하는 구분이 있습니다. 주석은 실재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실재로서 일상의 관습적 진리, 곧 sammuti-sacca이고, 다른 하나는 궁극적 실재로서 추상적 진리, 곧 paramattha-sacca입니다.
주석이 드는 비유는 간명합니다. 우리가 늘 보는 탁자의 매끈한 표면은 겉으로 드러난 실재이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 표면은 여러 힘과 성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학자는 일상에서는 ‘물’이라고 말하지만 실험실에서는 H₂O라고 적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경장에서는 남자, 여자, 중생, 자아 같은 세간의 말을 쓰시고, 논장에서는 무더기(khandha), 요소(dhātu), 감각장소(āyatana) 같은 분석의 말을 쓰십니다.
관습적 진리
궁극적 진리
빠알리
sammuti-sacca
paramattha-sacca
말의 예
사람, 여자, 중생, 자아, 탁자, 물
마음, 느낌, 물질, 무더기, 요소
비유
매끈한 탁자 표면, ‘물’
표면을 이루는 힘과 성질, H₂O
주로 쓰이는 곳
경장·율장 (관습적 가르침)
논장 (궁극적 가르침)
『상가하』의 자리
제8장의 개념(빤냣띠)
제1–7장이 다루는 네 가지 실재
표 3. 두 가지 진리의 대조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관습적 진리는 거짓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경에서 ‘사람’이나 ‘나’라는 말을 쓰셨다고 해서 거짓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듯, 관습의 말은 세간에서 뜻을 주고받기 위한 정당한 도구입니다. 문제는 도구를 도구로 알지 못하고, ‘사람’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무언가가 이름 그대로 단일하고 지속하는 실체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데서 생깁니다. 아비담마는 그 이름을 벗겨 내고 그 아래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헤아려 보이는 작업입니다.
이름과 그림자: 빤냣띠 미리 보기
『상가하』는 관습적 진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제8장 끝에서 ‘개념’, 곧 빤냣띠(paññatti)라는 이름으로 따로 다룹니다. 이 연재의 열다섯째 편에서 자세히 읽겠지만, 네 가지 실재를 이해하려면 그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미리 알아 두는 편이 좋습니다. 제8장은 땅이나 산 같은 이름은 요소들이 변해 가는 모양에 기대어, 집이나 수레 같은 이름은 재료들이 모여 놓인 모양에 기대어, 사람이나 개인 같은 이름은 다섯 무더기에 기대어 붙여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름 붙여진 것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궁극적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들의 그림자와 같은 모양으로 마음이 일어날 때의 대상이 되는 것들…
— 제8장, 개념의 구분
무엇에 기대어
붙여진 이름의 예
요소들이 변해 가는 모양
땅(bhūmi), 산(pabbata)
재료들이 모여 놓인 모양
집(geha), 수레(ratha), 짐수레(sakaṭa)
다섯 무더기
남자(purisa), 개인(puggala)
달의 운행 따위
방향(disā), 시간(kāla)
부딪힘이 없는 모양
우물(kūpa), 동굴(guhā)
요소의 표상과 특별한 수행
까시나의 표상(kasiṇa-nimitta)
표 4. 제8장이 열거하는 개념의 근거. 이 모두는 궁극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음의 대상이 됩니다.
제8장은 더 나아가 개념을 ‘실재하는 것을 알게 하는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알게 하는가’에 따라 여섯으로 나눕니다. 물질이나 느낌처럼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을 이름으로 알게 하면 실재하는 것의 개념이고, 땅이나 산처럼 실재하지 않는 것을 알게 하면 실재하지 않는 것의 개념입니다. 나머지 넷은 둘을 섞은 것으로, 각각 ‘여섯 신통을 지닌 이’, ‘여인의 목소리’, ‘눈의 알음알이’, ‘왕의 아들’이 예로 제시됩니다. 여인의 목소리에서 목소리는 궁극적으로 실재하지만 여인은 그렇지 않고, 왕의 아들에서는 왕도 아들도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식입니다. 제8장은 이 모든 개념이 “세간의 약속으로 지어진 것(lokasaṅketanimmitā)”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까닭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마음의 대상은 될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산’을 떠올릴 때, 떠올려진 ‘산’은 개념이지만 그것을 떠올리는 마음은 궁극적 실재입니다. 아비담마의 분석은 대상이 무엇이냐와 그 대상을 아는 마음이 무엇이냐를 언제나 따로 묻습니다. 이 구분은 이 편의 연습 문제 마지막 문항에서 다시 시험하게 됩니다.
5
빠라맛타, 전도되지 않은 것
전거: 제1장 §2의 주석
‘궁극적 실재’로 옮긴 paramattha는 이 책 전체에서 가장 무게가 실린 말입니다. parama와 attha의 합성어인데, 주석은 parama를 aviparīta, 곧 ‘뒤바뀌지 않은, 변하지 않는’과 nibbaṭṭita, 곧 ‘추출된, 추상된’으로 풀고, attha는 ‘것, 사물’로 풉니다. 여기서도 attha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paramattha는 ‘변하지 않는 것’, 또는 ‘추상된 것’이며, 주석은 ‘추상적 실재’를 가장 가까운 번역어로 제안합니다.
그런데 곧바로 의문이 생깁니다. 불교는 모든 형성된 것이 무상하다고 가르치는데, 어떻게 ‘변하지 않는’ 실재를 말할 수 있을까요? 주석은 이 말이 모든 빠라맛타가 영원하거나 항상하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먼저 못 박고, 놋그릇의 예를 듭니다.
놋그릇은 빠라맛타가 아닙니다. 그것은 순간마다 변하고, 녹여서 꽃병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놋그릇과 꽃병을 끝까지 분석하면 둘 다 근본적인 물질의 힘과 성질들로 환원되고, 아비담마는 이것을 물질의 빠라맛타(rūpa-paramattha)라고 부릅니다. 이 물질의 성질들 역시 변하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고유한 특성은 그것이 그릇 속에 있든 꽃병 속에 있든 똑같습니다. 어떤 결합 속에 놓이든 제 정체를 잃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 점 때문에 주석은 parama를 ‘변하지 않는’ 혹은 ‘실재하는’으로 해석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의 지속 시간이 아니라 특성의 동일성입니다.
그림 2. 분해의 사다리. 이름이 붙은 것은 한 단계 더 쪼갤 수 있는 한 여전히 개념입니다. 더 쪼갤 수 없고, 어떤 결합 속에서도 같은 특성을 드러내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궁극적 실재를 만납니다. 제8장이 수레를 ‘재료가 모여 놓인 모양’에 기댄 이름으로 드는 것을 바탕으로 그렸습니다.
주석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네 가지 빠라맛타는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마음, 마음부수, 물질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vijjamāna dhammā)이라는 점에서 실재라 불리며, 더 이상 환원되지 않고 고유한 특성을 잃지 않는 것들입니다. 한편 출세간의 열반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서, 주석은 이를 유일한 절대적 실재이자 불교의 최고선이라고 부릅니다. 네 실재는 모두 ‘궁극적’이지만, 열반이 나머지 셋과 같은 방식으로 궁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두십시오. 다음 절의 사분도에서 열반의 칸만 색을 달리한 까닭입니다.
스스로 해 보기
주변의 사물 하나를 골라 그림 2처럼 사다리를 그려 보십시오. ‘휴대전화’에서 시작해 부품, 재료로 내려가다 보면 어느 단계에서 이름이 더 이상 붙지 않고 ‘단단함’이나 ‘따뜻함’ 같은 성질만 남게 됩니다. 그 성질들이 무엇이고 몇 가지인지는 제6장을 읽는 열세째 편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은 사다리의 맨 아래 칸이 비어 있다는 것만 느껴 보면 충분합니다.
게송의 논리를 한 문장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논장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관습의 말을 걷어 내고 궁극의 관점에서 헤아리면, 남김없이 이 네 가지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sabbathā(모두, 모든 방면으로)라는 마지막 말이 그 ‘남김없음’을 보증합니다. 다섯째 실재도, 넷 밖에 떨어진 나머지도 없습니다. 제6장은 물질과 열반을 모두 다룬 뒤 거의 같은 게송으로 이 선언을 되풀이합니다.
Iti cittaṃ cetasikaṃ rūpaṃ nibbānam iccapiparamatthaṃ pakāsenti catudhā va tathāgatā.
이와 같이 여래들께서는 궁극적 실재를 마음, 마음부수, 물질, 열반의 오직 네 가지로 드러내신다.
— 제6장 §7의 끝
89citta마음
대상을 아는 것. 네 실재의 첫째이며 제1장의 주제. 더 세밀하게 나누면 121가지.
세간 81 · 출세간 8
52cetasika마음부수
마음과 함께 일어나 마음과 결합하는 정신적 요소들. 7 + 6 + 14 + 19 + 6 = 52. 제2장의 주제.
출세간 마음과 결합하면 출세간
28rūpa물질
물질의 근본 단위와 물질적 변화를 함께 가리킴. 제6장에서 28가지로 열거됨.
세간
1nibbāna열반
형성되지 않은 것. 네 도의 지혜로 실현되며, 도와 과의 마음이 대상으로 삼는 것. 제6장 §7.
출세간
4catudhā
세간과 출세간
주석은 네 실재를 세간(lokiya)과 출세간(lokuttara)으로 다시 가릅니다. 이른바 ‘중생’은 세간에 속하며 정신(nāma)과 물질(rūpa)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부수, 그리고 물질은 세간의 것입니다. 다만 마음 가운데 여덟 가지 출세간 마음과 그것에 딸린 마음부수는 예외입니다. 그리고 열반은 출세간입니다. 사분도의 오른쪽 아래 칸만 옅게 물들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둘째 실재와 셋째 실재에 대한 짧은 소개
마음부수(cetasika)는 다음 절과 제2장에서 따로 다루지만, 수의 짜임만은 지금 보아 두면 좋습니다. 제2장 머리말에 따르면 52가지 마음부수는 모든 마음에 공통으로 있는 7가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6가지, 모든 해로운 마음에서 발견되는 것을 포함한 해로운 것 14가지, 모든 아름다운 마음에 공통인 19가지, 그리고 경우에 따라 일어나는 아름다운 것 6가지로 나뉩니다. 표지 얀뜨라의 둘째 고리가 다섯 무리로 끊겨 있는 것이 이 짜임입니다. 물질(rūpa)에 대해 주석은, 아비담마에서 이 말이 물질의 근본 단위와 물질적 변화를 함께 가리키며 28가지로 열거된다고만 미리 알려 줍니다.
넷째 실재, 열반
열반은 『상가하』에서 따로 한 장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제6장이 물질을 모두 다룬 끝에 짧은 한 절(§7)로 정리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절은 매우 정밀합니다. 열반은 출세간이라 불리고, 네 가지 도의 지혜로 실현되어야 하며, 도와 과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갈애라는 이름의 얽어맴(vāna)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nikkhantattā)’ 열반이라고 불립니다. 이어서 이 절은 열반을 세 가지 기준으로 셉니다.
기준
수
나눔
고유한 성품에 따라 (sabhāvato)
1
한 가지
방편에 따라 (kāraṇapariyāyena)
2
받침이 남아 있는 열반의 요소(saupādisesa), 받침이 남아 있지 않은 열반의 요소(anupādisesa)
양상의 차이에 따라 (ākārabhedena)
3
공함(suññata), 표상 없음(animitta), 원함 없음(appaṇihita)
표 5. 제6장 §7의 열반 분류. 하나의 실재를 보는 방식이 셋일 뿐, 열반이 여럿인 것은 아닙니다.
얽어맴에서 풀려난 위대한 선인들은, 죽음 없고 끝이 없으며 형성되지 않았고 위없는 경지를 열반이라고 말한다.
— 제6장 §7
7
네 실재와 다섯 무더기
전거: 제1장 §2의 주석, 제8장 §4 (정신과 물질의 구분)
경을 먼저 공부한 이라면 ‘중생은 다섯 무더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르침에 익숙할 것입니다. 네 가지 실재는 이 다섯 무더기와 어떤 관계일까요? 주석은 둘 사이의 대응을 정확한 수로 보여 줍니다. 물질의 무더기는 28가지 물질 전체입니다. 52가지 마음부수 가운데 하나는 느낌(vedanā)이고 또 하나는 인식(saññā)이며, 나머지 50가지를 한데 묶어 형성들(saṅkhār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마음부수들이 담기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알음알이(viññāṇa), 곧 마음입니다.
그림 3. 네 가지 실재와 다섯 무더기의 대응. 선 위의 수는 각 무더기로 들어가는 실재의 가짓수입니다. 마음부수 52가 1 + 1 + 50으로 세 무더기에 나뉘어 들어가고, 열반은 어느 무더기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왼쪽 괄호는 정신(nāma)으로 묶이는 마음과 마음부수를 나타냅니다.
이 대응에서 눈여겨볼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다섯 무더기는 세간의 존재, 곧 ‘중생’을 분석하는 틀이기 때문에 열반은 그 안에 자리가 없습니다. 네 가지 실재는 다섯 무더기로 분석되는 모든 것에 더해, 그것을 넘어선 것까지 포괄하는 더 넓은 틀입니다. 둘째, 그러면서도 제8장은 정신과 물질을 나누는 대목에서 물질적인 법은 물질의 무더기일 뿐이라고 하고, 마음과 마음부수로 이루어진 네 가지 비물질 무더기와 열반을 합한 다섯 가지를 모두 ‘비물질’이라고도, ‘정신’이라고도 부른다고 말합니다. 그림의 괄호는 제1장 주석의 좁은 용법을 따랐고, 제8장의 넓은 용법에서는 열반까지 정신에 들어간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 두십시오.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의 의미
이 그림을 가만히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드러납니다. 한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을 이 틀에 넣어 보면, 물질은 물질의 무더기로, 느낌과 인식은 제 무더기로, 의도를 비롯한 나머지 정신 요소들은 형성의 무더기로, 아는 작용은 알음알이의 무더기로 빠짐없이 들어갑니다. 어느 칸에도 들어가지 않고 남아서 ‘이 모두를 소유한 나’의 자리를 차지할 무엇은 없습니다. 나라다 장로가 서문에서 아비담마를 공부하는 이는 무아(anattā)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헤아림이 곧 무아의 논증이 되는 것, 이것이 아비담마가 숫자를 그토록 중시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8
마음, 대상을 아는 것
전거: 제1장 §2의 주석, 제2장 §1과 주석
네 실재 가운데 첫째인 마음(citta)은 ‘생각하다’를 뜻하는 어근 √cit에서 왔습니다. 문법가들의 정의는 짧습니다.
Ārammaṇaṃ cintetī ti cittaṃ.
대상을 생각한다(안다), 그래서 마음이다.
— 제1장 §2 주석에 인용된 정의
여기서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 cinteti는 좁은 의미의 ‘사유하다’가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의 ‘알다(vijānāti)’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마음은 대상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눈이 색을 볼 때도, 소리가 들릴 때도 거기에는 대상을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둘째, ‘대상을 아는 것’이라는 정의는 아는 누군가를 전제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주석은 아비담마의 관점에서 마음을 ‘대상을 앎’ 그 자체로 정의하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앎의 배후에 영혼과 같은 행위자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아는 자가 아니라 앎이라는 사건입니다.
또한 아비담마에서는 다음 말들을 모두 같은 뜻으로 씁니다. 주석은 이 때문에 아비담마의 관점에서는 ‘마음’과 ‘의식’ 사이에 구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citta 마음
ceta 마음
cittuppāda 마음의 일어남
nāma 정신
mana 마노
viññāṇa 알음알이
다만 쓰는 자리는 다릅니다. 중생을 두 부분으로 나눌 때는 정신(nāma)이라 하고, 다섯 무더기로 나눌 때는 알음알이(viññāṇa)라 하며, 여러 종류의 마음을 가리킬 때는 한결같이 citta를 씁니다. 『상가하』 제1장의 이름이 ‘마음(citta)의 개요’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마음부수의 정의와 그 논리
마음이 ‘앎’이라면, 그 앎에 색깔과 방향을 주는 것이 마음부수입니다. 마음은 혼자 일어나지 않고 언제나 마음부수들을 거느리고 일어납니다. 제2장은 마음부수를 다음 게송으로 정의합니다.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소멸하며, 대상과 토대를 같이하는, 마음과 결합된 쉰두 가지 법을 마음부수라고 한다.
— 제2장 §1
정의의 논리: 왜 네 조건인가
주석은 이 정의가 류(類)와 종차(種差)를 이용한 논리적 정의가 아니라, 마음부수가 지닌 네 가지 특성을 나열하는 방식이라고 먼저 밝힙니다. ①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② 함께 소멸하며, ③ 대상이 같고, ④ 토대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①과 ②만으로는 부족할까요? 주석에 따르면 몸과 말로 뜻을 드러내는 물질, 곧 암시의 물질(viññatti-rūpa)은 마음과 동시에 일어나고 동시에 소멸합니다. ①과 ②만 두면 이 물질까지 마음부수에 들어와 버립니다. 그래서 ③ ‘대상이 같다’는 조건을 더해 이것을 걸러 냅니다. 물질은 대상을 아는 것이 아니므로 대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석은 앞의 세 조건을 갖춘 것은 반드시 넷째 조건, 곧 토대가 같다는 조건도 갖추게 된다고 덧붙입니다.
이 짧은 논증은 아비담마의 정의 방식을 잘 보여 줍니다. 조건 하나하나가 무엇을 걸러 내기 위해 거기 있는지를 따지는 것,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모든 분류표 앞에서 던질 질문입니다.
그 [네 실재] 가운데 먼저 마음은 네 가지이다. 욕계의 마음, 색계의 마음, 무색계의 마음, 그리고 출세간의 마음이다.
— 제1장 §3
네 영역 (bhūmi)
욕계(kāmāvacara).kāma는 주관적인 감각적 갈망을 뜻하기도 하고, 형색·소리·냄새·맛·감촉 같은 감각의 대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네 가지 고통스러운 세계(apāya), 인간 세계, 여섯 천상 세계를 합한 열한 가지 존재의 세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avacara는 ‘돌아다니는 것, 자주 드나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욕계의 마음은 주로 감각의 세계에서 돌아다니는 마음, 감각과 그 대상에 관련된 마음입니다. 주석은 ‘주로’라는 말에 무게를 둡니다. 이 마음들은 대개 욕계에서 일어나지만, 다른 세계에서도 마음이 감각의 대상을 인식할 때는 일어납니다. 영역의 이름은 장소의 주소라기보다 마음이 머무는 성향의 이름입니다.
색계(rūpāvacara)와 무색계(arūpāvacara). 각각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에 관련된 마음, 또는 색계와 무색계의 세계에서 주로 돌아다니는 마음입니다. 색계는 색계 선정을 닦은 이들이 태어나는 세계입니다. 천상의 존재들도 미세한 몸을 가지는데 왜 이 세계만 ‘색(물질)의 세계’라 부르냐는 물음에, 주석은 이 세계에 태어나게 하는 선정이 주로 흙·물·불 같은 물질적인 까시나를 대상으로 닦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무색계는 물질적인 몸이 없이 명상의 힘으로 정신만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출세간(lokuttara).loka와 uttara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서 loka는 다섯 무더기, 더 정확히는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이고, uttara는 ‘위에, 넘어서’입니다. 출세간의 마음은 이 정신과 물질의 세계를 넘어서게 하는 마음입니다. 앞의 셋은 모두 세간(lokiya)의 마음이라 불립니다.
네 성질 (jāti)
제1장은 마음을 영역에 따라 넷으로 나눈 다음, 욕계의 첫 마음들을 다루는 대목에서 성질에 따른 또 하나의 넷을 끌어들입니다. 앞의 넷이 마음이 ‘어디서’ 일어나는가라면, 이 넷은 마음이 ‘무엇인가’입니다.
해로운 마음(akusala). 탐욕(lobha), 적의 혹은 성냄(paṭigha, dosa), 어리석음(moha)에서 솟아나는 마음으로, 원하지 않는 과보(aniṭṭha vipāka)를 낳습니다.
유익한 마음(kusala). 이와 반대로 탐욕 없음 곧 너그러움(alobha), 성냄 없음 곧 선의(adosa), 어리석음 없음 곧 지혜(amoha)에 뿌리를 두고, 원하는 과보(iṭṭha vipāka)를 낳습니다.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을 합하여 업(kamma)이라고 합니다.
과보의 마음(vipāka).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의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주석은 업도 과보도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작용만 하는 마음(kiriyā). 달리 알맞은 말이 없어서 ‘업으로서 효력이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으로 옮겨지는 마음입니다. 과보를 낳지도 않고 과보로 생긴 것도 아닌 마음입니다.
이제 두 개의 넷을 가로세로로 겹치면 16칸의 격자가 생깁니다. 제1장이 세는 89가지 마음은 모두 이 격자의 어느 한 칸에 자리를 잡습니다. 아래 격자의 칸을 눌러 각 칸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위쪽의 단추로 89가지 셈과 121가지 셈을 오갈 수 있습니다.
칸을 누르면 아래에 설명이 나옵니다. 빗금 칸은 비어 있는 자리입니다.
akusala해로운
kusala유익한
vipāka과보
kiriyā작용
영역 합계
칸을 하나 골라 보십시오
가로줄은 마음이 속하는 영역, 세로줄은 마음의 성질입니다. 줄 끝과 열 아래의 수는 각각의 합계이고, 오른쪽 아래의 동그라미가 전체 합계입니다.
격자를 보면 몇 가지 규칙이 스스로 드러납니다. 해로운 마음은 욕계에만 있습니다. 선정의 마음은 그 성품이 해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유익한 마음, 과보의 마음, 작용만 하는 마음이 같은 수로 나란히 섭니다. 출세간에는 작용만 하는 마음의 칸이 비어 있고, 유익한 마음 넷과 그 결과인 과보의 마음 넷만 있습니다. 제1장은 네 가지 도(道)에 따라 유익한 출세간 마음이 넷이고, 과보는 그 열매이기 때문에 역시 넷이라고 말합니다. 가로로 더하면 54, 15, 12, 8이고, 세로로 더하면 12, 21, 36, 20이며, 어느 쪽으로 더하든 89가 됩니다.
이와 같이 해로운 것은 열둘, 유익한 것은 스물하나, 과보는 서른여섯, 작용하는 마음은 스물이다. 욕계에는 쉰네 가지, 색계에는 열다섯 가지라 말해야 하고, 무색계에는 열두 가지 마음, 위없는 [출세간]에는 그와 같이 여덟 가지이다.
— 제1장 §9 끝의 요약 게송
89에서 121로
제1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마지막 절에서 셈을 한 번 더 바꿉니다. 지혜로운 이들은 89가지로 나뉜 마음을 다시 121가지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늘어나는 것은 출세간의 마음뿐입니다. 네 가지 도와 네 가지 과의 마음을, 그것이 어느 선정을 바탕으로 일어났는지에 따라 각각 다섯으로 나누면 8가지가 40가지가 됩니다. 그러면 유익한 마음은 21에서 37로, 과보의 마음은 36에서 52로 늘어나고 전체는 121이 됩니다. 선정의 구성요소가 무엇이고 왜 다섯 단계인지는 다섯째 편과 여섯째 편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이와 같이 여든아홉으로 나뉜 마음을, 또한 지혜로운 이들은 백스물하나로 나눈다. …공덕[유익한 것]은 서른일곱 가지, 과보는 그와 같이 쉰두 가지이니, 깨달은 이들은 마음이 백스물하나라고 말한다.
— 제1장 §10과 그 요약 게송
12 + 37 + 52 + 20 = 121(출세간 8 → 40, 증가분 32)
10
아비담마를 공부하는 태도
전거: 편역자 서문, 제2장 머리말
이렇게 많은 숫자와 분류가 해탈에 꼭 필요할까요? 나라다 장로는 서문에서 스스로 이 물음을 던지고 조심스럽게 답합니다.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열반을 실현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실재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건네주고, 아비담마를 모르면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 가운데 어떤 것의 참뜻을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있으며, 위빳사나를 닦는 데 확실히 매우 유용합니다. 그러나 장로는 아비담마가 해탈을 얻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깨달음은 순전히 각자가 스스로 보아 아는 것(sandiṭṭhika)이기 때문입니다.
장로가 드는 예들은 이 말에 무게를 더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고 슬픔에 빠졌던 빠따짜라는 발을 씻은 물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열반을 실현했습니다. 넉 달 동안 게송 하나를 외우지 못했던 쭐라빤타까는 손에 쥔 깨끗한 천이 더러워지는 무상함을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뒷날 사리뿟따 존자가 되는 우빠띳사는 원인과 결과에 관한 게송 반 수를 듣고 열반을 실현했습니다. 떨어진 시든 잎 하나로 벽지불의 깨달음을 얻은 이들도 있었고, 보살이 붓다가 되는 바탕은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었습니다. 담마는 자기 자신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장로의 결론입니다.
그러면 왜 공부하는가
아비담마는 해탈의 유일한 문이 아니라, 그 문을 여는 여러 열쇠 가운데 가장 정교하게 깎인 열쇠입니다. 나라다 장로는 피상적으로 읽는 이에게 아비담마는 먼지처럼 메마르게 보이겠지만, 진리를 찾는 지혜로운 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안내서이자 지적인 향연이 된다고 말합니다. 같은 책이 누구에게는 숫자의 목록이고 누구에게는 자기 마음의 해부도입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읽는 태도입니다.
숫자를 외우기 전에 분석하라
제2장 머리말에서 장로는 이 태도를 구체적인 공부법으로 제시합니다. 화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은 수많은 화학식 앞에서 당황하지만, 직접 여러 물질을 분석하고 시험해 보기 시작하면 그 과목이 흥미롭고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비담마를 공부하는 이는 먼저 각 마음을 스스로 따져 분석하여 어떤 마음부수가 들어 있을지 자기 추론으로 찾아본 다음, 그 결과를 원문과 비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숫자를 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원문의 뜻을 지혜롭게 붙잡게 된다고 장로는 말합니다.
이 연재는 이 권고를 그대로 방법으로 삼겠습니다. 앞으로 각 편에서는 분류표를 먼저 외우게 하는 대신, 분류의 기준이 되는 축을 먼저 세우고 그 축들이 만들어 내는 칸을 스스로 채워 보게 한 뒤 원문과 맞춰 보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이번 편의 89 격자가 그 첫 연습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해로운 마음 12가지를 세 개의 축으로 된 입체 도형 위에 놓아 보게 됩니다.
빠알리 게송을 소리 내어 읽기. 『상가하』의 요약 게송들은 암송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뜻을 알고 난 뒤 소리 내어 읽으면 숫자가 저절로 붙습니다.
축을 먼저, 칸은 나중에. 모든 분류표 앞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었는가’를 먼저 묻고, 그 기준들이 몇 개의 칸을 만드는지 계산해 보십시오.
빈칸의 이유를 묻기. 격자에서 빗금 칸이 왜 비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채워진 칸을 외운 것보다 더 깊이 이해한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비추어 보기. 아비담마의 분석 대상은 책이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마음입니다.
11
연습 문제
다섯 문항,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 순서. 선택하는 즉시 채점되며, 해설은 펼쳐서 볼 수 있습니다.
맞힌 문항 0 / 5
1
『아비담맛타상가하』가 제시하는 궁극적 실재와 그 가짓수가 바르게 짝지어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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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③. 제1장 §2의 주석은 아비담마가 물질을 28가지로 열거한다고 미리 알려 주고, 제6장이 그 28가지를 다룹니다.
① 마음은 89가지(또는 121가지)이고, 52가지는 마음부수의 수입니다. ② 역시 두 수를 뒤바꾼 것입니다. ④ 열반은 고유한 성품으로는 한 가지입니다. 방편에 따라 둘, 양상에 따라 셋으로 셀 수 있을 뿐 넷으로 세는 방식은 제6장 §7에 없습니다. ⑤ 개념은 제8장에서 여섯 가지로 나뉘지만, 궁극적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네 가지 궁극적 실재에 들지 않습니다. 제1장 §2의 게송은 궁극적 의미에서 아비담마의 것들이 ‘모두(sabbathā)’ 네 가지라고 못 박습니다.
2
논장의 일곱 논서와 『아비담맛타상가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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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⑤. 논장의 일곱 논서는 담마상가니, 위방가, 다뚜까타, 뿍갈라빤냣띠, 까타왓투, 야마까, 빳타나입니다. 『상가하』는 이 일곱 논서 밖에서 아누룻다 장로가 지은 개요서로서, 논장 전체의 개요를 제공합니다. 나라다 장로가 아비담마에 통달하려면 일곱 논서 전체를 주석서와 함께 거듭 읽어야 한다고 따로 당부하는 것도 『상가하』가 논장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①~④는 모두 제1장 §1 주석의 논서 소개와 일치합니다.
3
주석이 paramattha의 parama를 ‘변하지 않는(aviparīta)’으로 해석하는 취지를 바르게 이해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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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 주석은 ‘변하지 않는’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모든 빠라맛타가 영원하거나 항상하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밝힙니다. 놋그릇과 꽃병은 모두 물질의 빠라맛타로 환원되는데, 이 물질의 성질들 역시 변하지만 그 고유한 특성은 어떤 결합 속에서도 같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지속이 아니라 특성의 동일성입니다.
①은 주석이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해석입니다. ③ 놋그릇은 빠라맛타가 아니라고 주석이 분명히 말합니다. ④ 주석은 attha가 여기서 ‘의미’가 아니라 ‘것, 사물’이라고 풉니다. ⑤ 주석은 마음, 마음부수, 물질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vijjamāna dhammā)이므로 실재라 부른다고 말합니다. 열반을 유일한 ‘절대적’ 실재라 부르는 것과 나머지 셋을 실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4
제1장의 영역(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과 성질(해로운·유익한·과보·작용)의 격자에 대한 진술로 옳은 것은?
해설 펼치기
정답 ④. 욕계의 과보의 마음은 해로운 과보로서 원인 없는 것 7, 유익한 과보로서 원인 없는 것 8, 욕계의 아름다운 과보 8을 합한 23가지입니다. 과보의 마음 전체는 23 + 5 + 4 + 4 = 36이므로, 23은 그 절반인 18을 넘습니다.
① 출세간 마음 8가지 가운데 네 가지 도의 마음은 유익한 마음이고, 네 가지 과의 마음만 과보의 마음입니다. ② 121가지 셈에서 늘어나는 것은 출세간 마음뿐입니다(8 → 40). ③ 유익한 마음 21가지는 욕계 8, 색계 5, 무색계 4, 출세간 4이므로 욕계가 아닌 것은 5 + 4 + 4 = 13가지입니다. ⑤ 출세간에는 작용만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격자에서 출세간 줄의 작용 칸이 빗금으로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해 보십시오.
5
다음 글을 바탕으로 추론한 것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있는 대로 고른 것은?
아비담마는 궁극적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을 마음, 마음부수, 물질, 열반의 넷으로 한정한다. 이 넷에 들지 않는 것, 이를테면 땅, 산, 집, 수레, 사람 따위는 궁극적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들의 그림자와 같은 모양으로 마음이 일어날 때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것들을 알게 하는 이름을 개념이라 한다. 땅이나 산 같은 이름은 요소들이 변해 가는 모양에 기대어, 집이나 수레 같은 이름은 재료들이 모여 놓인 모양에 기대어, 사람이나 개인 같은 이름은 다섯 무더기에 기대어 붙여진다.
개념은 그것이 알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실재하는지에 따라 여섯으로 나뉜다. (가) 실재하는 것의 개념, (나) 실재하지 않는 것의 개념, (다) 실재하는 것에 의해 실재하지 않는 것을 알게 하는 개념, (라) 실재하지 않는 것에 의해 실재하는 것을 알게 하는 개념, (마) 실재하는 것에 의해 실재하는 것을 알게 하는 개념, (바) 실재하지 않는 것에 의해 실재하지 않는 것을 알게 하는 개념이다. (가)의 예는 ‘물질’, ‘느낌’이고, (나)의 예는 ‘땅’, ‘산’이며, (다)~(바)의 예는 차례대로 ‘여섯 신통을 지닌 이’, ‘여인의 목소리’, ‘눈의 알음알이’, ‘왕의 아들’이다. 합성된 이름에서 ‘~에 의해’에 해당하는 것은 꾸미는 앞 요소이고, 알게 되는 것은 꾸밈을 받는 뒤 요소이다.
보 기
ㄱ. ‘왕의 아들’이 (바)로 분류되는 것은 ‘왕’과 ‘아들’이 모두 다섯 무더기에 기대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규정과 정합한다.
ㄴ. ‘여섯 신통을 지닌 이’와 ‘여인의 목소리’는 모두 실재하는 요소와 실재하지 않는 요소를 하나씩 결합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요소가 앞 요소인지 뒤 요소인지는 서로 반대이다.
ㄷ. 개념이 마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산을 떠올리는 그 마음 역시 궁극적 의미에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해설 펼치기
정답 ③ (ㄱ, ㄴ).
ㄱ (옳음). (바)는 앞 요소와 뒤 요소가 모두 실재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왕’도 ‘아들’도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글은 사람이나 개인 같은 이름이 다섯 무더기에 기대어 붙여진다고 규정합니다. 다섯 무더기 자체는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이지만, 그것에 ‘기대어 붙여진’ 이름은 그 무더기들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세워진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두 요소 모두 실재하지 않는다는 판정은 이 규정과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그 규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나옵니다.
ㄴ (옳음). 글의 마지막 문장에 따르면 ‘~에 의해’에 해당하는 것이 앞 요소, 알게 되는 것이 뒤 요소입니다. (다)의 ‘여섯 신통을 지닌 이’는 실재하는 것(앞 요소, 신통)에 의해 실재하지 않는 것(뒤 요소, 그것을 지닌 사람)을 알게 하므로 실재하지 않는 요소가 뒤에 있습니다. (라)의 ‘여인의 목소리’는 실재하지 않는 것(앞 요소, 여인)에 의해 실재하는 것(뒤 요소, 목소리)을 알게 하므로 실재하지 않는 요소가 앞에 있습니다. 두 예는 구성은 같고 배치가 반대입니다.
ㄷ (옳지 않음). 글은 실재하지 않는 것들도 ‘마음이 일어날 때의 대상’이 된다고 말할 뿐, 그 대상을 아는 마음의 존재론적 지위를 대상의 지위에 따라 바꾸지 않습니다. 오히려 첫 문장은 마음을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넷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대상이 개념이라는 사실과 그 대상을 아는 마음이 궁극적 실재라는 사실은 양립하며, 이 둘을 섞는 것이 이 문항이 노린 함정입니다. 본문 넷째 절의 “떠올려진 ‘산’은 개념이지만 그것을 떠올리는 마음은 궁극적 실재”라는 설명을 다시 확인해 보십시오.
이 문항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글이 정해 준 형식 규칙(앞 요소와 뒤 요소의 역할)을 예시에 정확히 적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의 지위’와 ‘아는 작용의 지위’라는, 층위가 다른 두 물음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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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이번 편의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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