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다 불교 입문 셋째 편

제2부 진리의 틀

존재를 분석하는 틀

Khandha · Āyatana · Dhātu

오온 · 12처 · 18계

스리랑카 사원 입구의 수호석에 새겨지는 풍요의 항아리, 곧 뿐깔라사(빠알리어로 puṇṇaghaṭa)를 본뜬 무늬. 한 항아리에서 솟은 연꽃 다섯 송이는 다섯 무더기를 나타낸다.

둘째 편에서 우리는 첫째 진리가 “요컨대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다”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는 것을 보았다. 괴로움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면, 그 다섯 무더기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붓다는 우리가 ‘나’, ‘사람’, ‘중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방식으로 분석하여 설했다. 그 가운데 경전에 가장 자주 나오고 서로 짝을 이루는 것이 다섯 무더기(오온), 열두 감각장소(12처), 열여덟 요소(18계)의 세 가지 틀이다. 이 편에서는 붓다가 왜 존재를 분석하는지를 먼저 살핀 뒤, 이 세 가지 틀을 하나씩 알아보고, 세 틀이 왜 따로 설해졌는지를 주석서의 설명에 따라 정리한다. 이 편의 내용은 앞으로 다룰 삼특상과 12연기, 그리고 위빳사나 수행의 바탕이 되므로, 다소 딱딱하더라도 찬찬히 읽어 두기를 권한다. 표와 그림을 곁에 두고 자기 경험에 하나씩 대어 보며 읽으면 훨씬 쉽게 익힐 수 있다.

Yathā hi aṅgasambhārā, hoti saddo ratho iti;
evaṃ khandhesu santesu, hoti sattoti sammuti.

마치 부품들이 모인 것을 두고 ‘수레’라는 말이 있듯이,
무더기들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관습적 이름이 있다.

「와지라 경」, SN 5.10

예상 학습 시간 약 60분. 본문 여섯 절, 이해도 점검 다섯 문제, 용어 카드 서른 장.

왜 분석하는가

붓다의 가르침에서 처음 배우는 이가 가장 낯설게 느끼는 점 하나는, 붓다가 ‘사람’을 이야기하는 대신 그 사람을 이루는 요소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내가 본다”, “내가 괴롭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붓다는 같은 경험을 두고 눈과 형색과 눈의 의식이 만났다거나,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다거나,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형성과 의식이 모여 있다고 말한다. 왜 붓다는 이렇게 분석하는가?

그 까닭은 둘째 진리에 있다.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는 대상을 ‘나’와 ‘나의 것’으로 붙드는 데서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붙듦은 우리가 자신을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 변치 않고 지속하는 무엇으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덩어리로 보이는 것은 붙들기 쉽다. 붓다는 이 덩어리를 요소들로 풀어 헤쳐서, 그 안 어디에도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과 같은 ‘나’가 없음을 보게 한다.

그림 3-1수레와 중생: 부품들 위에 붙은 이름

바퀴바퀴축차체끌채멍에
‘수레’라는 이름
물질느낌인식형성의식
‘중생’, ‘나’라는 관습적 이름

수레를 부품들로 나누어 놓으면 ‘수레’는 부품들이 모인 데 붙인 이름일 뿐, 부품들과 따로 있는 또 하나의 물건이 아님이 드러난다. 사람도 다섯 무더기로 나누어 놓으면 ‘나’는 무더기들이 모인 데 붙인 이름일 뿐임이 드러난다.

수레를 바퀴, 축, 차체로 나누어 놓으면 ‘수레’란 부품들이 모인 데 붙인 이름일 뿐 부품들과 따로 있는 실체가 아님이 드러나듯이, 사람을 다섯 무더기로 나누어 놓으면 ‘나’란 무더기들이 모인 데 붙인 이름일 뿐임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수레가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품들이 모여 있는 한 수레는 여전히 짐을 싣고 길을 달린다. 다만 우리는 더 이상 ‘수레’라는 이름 뒤에 무언가 신비한 알맹이가 숨어 있다고 착각하지 않게 된다.

와지라 비구니의 대답

표지에 실은 게송은 마라가 와지라 비구니에게 “이 중생은 누가 만들었는가? 중생을 만든 자는 어디 있는가? 중생은 어디서 생겨나며 어디서 소멸하는가?”라고 물어 그를 흔들려 했을 때 그가 답한 것이다. 마라의 물음에는 중생이라는 하나의 실체가 있고, 그것을 만든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와지라는 그 전제부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수레의 비유로 ‘중생’이 무더기들 위에 붙은 이름일 뿐임을 밝힌 뒤 이렇게 잇는다.

Dukkhameva hi sambhoti, dukkhaṃ tiṭṭhati veti ca;
nāññatra dukkhā sambhoti, nāññaṃ dukkhā nirujjhati.

여기에는 오직 괴로움이 생겨나고, 괴로움이 머물고 사라질 뿐.
괴로움 말고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고, 괴로움 말고는 아무것도 소멸하지 않는다.

「와지라 경」, SN 5.10

이 게송은 붓다의 분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정확히 보여 준다. 분석은 존재의 부품 목록을 만드는 학문적 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거기서 괴로움의 실상과 그 소멸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와지라의 대답 속에서 무더기들은 곧 괴로움, 곧 첫째 진리다. 분석은 둘째 편에서 본 ‘괴로움을 철저히 아는’ 일의 구체적인 방법인 셈이다.

관습적 표현과 궁극적 실재

그렇다면 붓다는 ‘나’, ‘너’, ‘사람’이라는 말을 아예 쓰지 말라고 가르쳤는가? 그렇지 않다. 붓다 자신이 경전 곳곳에서 ‘나’, ‘여래’, ‘비구들이여’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테라와다의 주석 전통은 이를 두 가지 진리, 곧 관습적 진리(sammutisacca)와 궁극적 진리(paramatthasacca)로 정리한다. 주석서는 옛 게송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Duve saccāni akkhāsi, sambuddho vadataṃ varo;
sammutiṃ paramatthañca, tatiyaṃ nūpalabbhati.

바르게 깨달은 분, 설하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신 분은
두 가지 진리, 곧 관습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를 설하셨으니, 세 번째는 얻을 수 없다.

주석서에 인용된 옛 게송

관습적 진리sammutisacca

‘사람’, ‘남자’, ‘여자’, ‘수레’처럼 여러 요소가 모인 것에 세상의 약속에 따라 붙인 이름과 그 이름으로 하는 말.

거짓이 아니다. “철수가 걸어간다”는 말은 그 약속 안에서 참이며, 세상의 일상은 이 말로 이루어진다.

쓰임: 부끄러움과 양심, 업의 주인됨 같은 가르침을 설할 때.

궁극적 진리paramatthasacca

그 이름 아래 실제로 존재하며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요소들에 관한 말. 곧 물질, 마음, 마음부수, 열반.

이것들은 저마다 고유한 성질을 지니며, 누가 어떻게 부르든 그 성질이 바뀌지 않는다.

쓰임: 무상·괴로움·무아를 꿰뚫어 보게 할 때.

주석서에 따르면 붓다는 듣는 이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 때로는 관습적 표현으로, 때로는 궁극적 표현으로 설했으며, 어느 쪽으로 설하든 붓다의 말은 참이다.

사투리와 표준어

한 스승이 어떤 학생에게는 그 지방의 말로, 다른 학생에게는 표준어로 가르치더라도 가르치는 내용은 같다. 사투리로 가르쳤다고 해서 그 가르침이 틀린 것이 아니고, 표준어로 가르쳤다고 해서 더 참된 것도 아니다. 붓다가 “비구들이여,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할 때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둘 다 참이며, 다만 무엇을 보게 하려는지가 다를 뿐이다.

이 구별은 무아를 배울 때 흔히 일어나는 혼란을 막아 준다. ‘나는 없다’는 말은 관습적 차원에서 ‘철수라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관습적 차원에서 철수는 분명히 있고, 철수가 지은 업의 과보는 철수에게 돌아간다. 철수가 약속을 했다면 철수가 지켜야 하고, 철수가 남을 해쳤다면 그 책임은 철수에게 있다. 붓다가 부정하는 것은 다섯 무더기와 따로, 또는 다섯 무더기 안에 변치 않는 주인으로서 있다고 여겨지는 ‘나’다. 분석은 관습적 진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 이름이 무엇 위에 붙어 있는지를 보게 하는 것이다. 다섯 무더기는 그 이름이 붙어 있는 자리다.

다섯 무더기

‘무더기’로 옮긴 khandha는 본래 나무의 줄기나 물건의 덩어리, 더미를 뜻하는 말이다. 한역에서는 온(蘊) 또는 음(陰)이라고 했다. 볏단을 쌓아 올린 더미를 떠올리면 이 말의 느낌을 잡기 쉽다. 더미는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많은 낱낱의 볏단이 쌓인 것이다. 「무더기 경」(SN 22.48)에서 붓다는 각 무더기가 왜 무더기라고 불리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Yaṃ kiñci, bhikkhave,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ayaṃ vuccati rūpakkhandho.

비구들이여,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수승한 것이든, 먼 것이든 가까운 것이든, 어떤 물질이든 이것을 물질의 무더기라고 한다.

「무더기 경」, SN 22.48

같은 정형구가 느낌·인식·형성·의식에 되풀이된다. 곧 ‘무더기’란 과거·현재·미래, 안팎, 거칠고 미세함 등 열한 가지 방식으로 나뉘는 같은 종류의 현상들을 한데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때과거미래현재
자리안밖
결거친 것미세한 것
품격저열한 것수승한 것
거리먼 것가까운 것

『청정도론』 제14장은 여기서 열한 가지 구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자세히 풀이하는데, 요점은 무더기가 어느 한 순간의 특정한 현상이 아니라 그 종류에 속하는 모든 현상의 총칭이라는 것이다. ‘느낌의 무더기’라고 할 때,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느낌 하나가 아니라 어제의 느낌과 내일의 느낌, 내 느낌과 남의 느낌, 강한 느낌과 희미한 느낌을 모두 한데 모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나의 느낌’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거대한 더미의 한 알갱이일 뿐이다.

다섯 무더기 하나하나

붓다는 「먹혀 버림 경」(SN 22.79)에서 다섯 무더기 각각의 이름이 왜 그런 이름인지를 그 기능에 따라 설명한다. 이 설명은 각 무더기의 성격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다.

Kiñca, bhikkhave, rūpaṃ vadetha? Ruppatīti kho, bhikkhave, tasmā ‘rūpan’ti vuccati. Kena ruppati? Sītenapi ruppati, uṇhenapi ruppati, jighacchāyapi ruppati, pipāsāyapi ruppati, ḍaṃsamakasavātātapasarīsapasamphassenapi ruppati.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물질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변형되기 때문에 ‘물질’이라고 한다. 무엇에 의해 변형되는가? 추위에 의해 변형되고, 더위에 의해 변형되고, 배고픔에 의해 변형되고, 목마름에 의해 변형되며, 등에·모기·바람·햇볕·뱀과의 접촉에 의해 변형된다. …

Kiñca, bhikkhave, vedanaṃ vadetha? Vedayatīti kho, bhikkhave, tasmā ‘vedanā’ti vuccati. … Kiñca, bhikkhave, saññaṃ vadetha? Sañjānātīti kho, bhikkhave, tasmā ‘saññā’ti vuccati. … Kiñca, bhikkhave, saṅkhāre vadetha? Saṅkhatamabhisaṅkharontīti kho, bhikkhave, tasmā ‘saṅkhārā’ti vuccanti. … Kiñca, bhikkhave, viññāṇaṃ vadetha? Vijānātīti kho, bhikkhave, tasmā ‘viññāṇan’ti vucca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느낌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느끼기 때문에 ‘느낌’이라고 한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인식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인식하기 때문에 ‘인식’이라고 한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형성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을 형성하기 때문에 ‘형성’이라고 한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의식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알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한다.

「먹혀 버림 경」, SN 22.79

물질rūpa · 색(色)

물질은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 따위에 의해 ‘변형되는 것’(ruppati)이다. 이 정의는 물질을 마음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물질은 무언가를 알지 못하고, 바깥의 조건에 부딪혀 변형될 뿐이다. 경전은 물질을 땅·물·불·바람의 네 가지 큰 요소(사대, mahābhūta)와 그것에서 파생된 물질로 설명한다. 여기서 땅은 흙이 아니라 단단함과 부드러움의 성질을, 물은 응집과 흐름의 성질을, 불은 열과 차가움의 성질을, 바람은 움직임과 지탱의 성질을 가리킨다.

땅의 요소단단함 · 부드러움

손바닥으로 책상을 누를 때 느껴지는 굳음, 볼을 만질 때의 부드러움.

물의 요소응집 · 흐름

흩어지지 않고 서로 붙들어 모이게 하는 성질. 반죽을 뭉치게 하는 것.

불의 요소열 · 차가움

뜨거운 찻잔의 온기, 겨울바람의 냉기. 무르익게 하고 식게 하는 성질.

바람의 요소움직임 · 지탱

숨이 들고 나는 움직임, 몸을 곧게 세워 버티게 하는 팽팽함.

우리 몸과 몸이 만나는 바깥 세계가 모두 물질의 무더기에 든다. 네 요소가 흙·물·불·바람이라는 ‘사물’이 아니라 ‘성질’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면, 뒤에 위빳사나 수행에서 몸을 관찰할 때 큰 도움이 된다. 몸을 ‘내 몸’이라는 덩어리로 보지 않고, 단단함과 따뜻함과 움직임이 끊임없이 바뀌는 흐름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느낌vedanā · 수(受)

느낌은 대상을 ‘느끼는’ 것으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세 가지가 있다. 여기서 느낌은 감정이 아니라 대상이 마음에 닿을 때 일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느낌의 색조를 가리킨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이 느낌 위에 여러 요소가 덧붙어 이루어진 것이다. 느낌은 둘째 편에서 본 세 가지 괴로움의 성질, 그리고 뒤에 볼 12연기에서 갈애가 일어나는 자리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즐거운 느낌에는 더 원하는 마음이, 괴로운 느낌에는 밀어내는 마음이 뒤따르기 쉽다.

인식saññā · 상(想)

인식은 대상을 ‘인식하는’ 것, 곧 대상의 특징을 붙잡아 ‘이것은 파랗다’, ‘이것은 소리다’라고 알아보고 표시해 두는 기능이다. 『청정도론』은 이를 목수가 나중에 알아보려고 나무에 표시를 해 두는 것에 비유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다시 알아보고 기억하고 이름 붙이는 일은 인식의 기능이다. 인식은 편리하지만 거칠게 표시하는 버릇이 있어서, 한 번 ‘싫은 사람’이라고 표시해 둔 이를 다시 볼 때마다 같은 표시를 떠올리게 한다.

형성saṅkhārā · 행(行)

형성은 다섯 무더기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원어 saṅkhāra는 ‘함께 만들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왔으며, 경전에서 문맥에 따라 여러 뜻으로 쓰인다. 다섯 무더기의 하나로 쓰일 때 형성은 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모든 정신 작용, 곧 마음이 대상을 향해 무언가를 ‘하는’ 활동 전체를 가리킨다. 그 가운데 대표는 의도(cetanā)다. 「먹혀 버림 경」은 이어서 형성이 “물질을 물질이게끔 형성하고, 느낌을 느낌이게끔 형성한다”고 설하는데, 이는 형성이 다른 무더기들을 지어내고 조건 짓는 능동적 힘임을 뜻한다. 아비담마는 이 무더기에 접촉·의도·주의 같은 기본 작용부터 탐욕·성냄·자애·지혜에 이르는 쉰 가지 마음부수를 배당한다. 우리가 흔히 성격이나 의지, 감정, 번뇌, 덕성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든다. 업을 다루는 일곱째 편에서 볼 “의도가 곧 업이다”라는 가르침도 이 무더기와 관계된다.

의식viññāṇa · 식(識)

의식은 대상을 ‘아는’ 것이다. 눈이 형색을 만날 때 형색을 아는 것이 눈의 의식이고, 귀가 소리를 만날 때 소리를 아는 것이 귀의 의식이다. 이렇게 여섯 감각기능에 따라 여섯 가지 의식이 있다. 의식은 대상을 ‘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만을 맡고,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은 인식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느낌이,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하는지는 형성이 맡는다. 이 넷은 한 순간의 마음에서 언제나 함께 일어난다.

왕과 신하들

『청정도론』은 의식과 나머지 정신 무더기들의 관계를 왕과 신하들의 관계에 비유한다. 의식은 왕처럼 대상을 아는 일의 주인이지만, 신하들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왕이 행차할 때 신하들이 늘 함께하듯, 의식이 일어날 때 느낌과 인식과 형성도 늘 함께 일어난다. 그러므로 의식을 다른 무더기들과 따로 떨어져 몸 안에 머무는 영혼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갈애의 소멸 긴 경」(MN 38)에서 사띠 비구가 “바로 이 의식이 윤회하며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자, 붓다는 의식이란 조건 따라 일어나며 조건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엄히 꾸짖었다. 의식을 하나의 변치 않는 영혼처럼 여기는 것은 초기경전에서부터 붓다가 분명히 바로잡은 오해다. 의식 역시 무더기, 곧 수많은 순간의 앎이 쌓인 더미일 뿐이다.

표 3-1다섯 무더기
무더기SN 22.79의 정의내용
물질
rūpa (色)
변형되는 것네 가지 큰 요소(땅·물·불·바람)와 파생된 물질. 몸과 바깥 세계.
느낌
vedanā (受)
느끼는 것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인식
saññā (想)
인식하는 것대상의 특징을 붙잡아 알아보고 표시하는 기능.
형성
saṅkhārā (行)
형성된 것을 형성하는 것의도를 비롯한 정신 작용 전체(느낌·인식 제외). 아비담마의 쉰 가지 마음부수.
의식
viññāṇa (識)
아는 것대상을 아는 마음. 여섯 감각기능에 따른 여섯 가지 의식.

한 순간을 다섯으로 나누어 보기

다섯 무더기는 책 속의 목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나누어 보는 틀이다. 아래의 짧은 장면을 읽고, 다섯 무더기를 하나씩 눌러 보자. 장면 속에서 그 무더기에 해당하는 부분이 밝아지고 풀이가 나타난다.

그림 3-2한 장면 속의 다섯 무더기

골목을 걷는데 뒤에서 어떤 소리가 귀에 닿는다. 그 순간 소리가 들린다. 곧 그것이 오랜 친구의 목소리임을 알아보고,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번지며, 다가가 말을 걸려는 의도가 일어나 몸이 뒤로 돌아선다.

무더기를 하나 골라 보자.

실제로는 이 모든 일이 매우 빠르게 이어지는 여러 마음의 순간에 걸쳐 일어나며, 각 순간마다 느낌·인식·형성·의식이 함께 일어난다. 여기서는 각 무더기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자리를 짚었다.

물질과 정신

다섯 무더기는 물질과 정신(名色, nāmarūpa)의 둘로도 묶인다. 물질의 무더기가 물질이고, 나머지 넷이 정신(名, nāma)이다. 여기서 ‘정신’으로 옮긴 nāma는 본래 ‘이름’이라는 뜻으로, 주석서는 대상을 향해 ‘기울어지는’(namati) 성질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풀이한다. 물질은 대상을 향하지 않지만, 정신은 언제나 무언가를 향해 기울어 있다.

물질rūpa물질의 무더기
정신nāma느낌 · 인식 · 형성 · 의식의 무더기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 두 묶음은 12연기와 위빳사나 수행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위빳사나 수행의 첫 단계에서 수행자가 가장 먼저 분명히 보게 되는 것이 바로 물질과 정신을 나누어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품과 물방울과 아지랑이

붓다는 「거품 덩어리 경」(SN 22.95)에서 다섯 무더기의 성격을 다섯 가지 비유로 그려 보였다. 앞에서 본 분석이 무더기들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면, 이 비유들은 그것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준다.

물질 ― 거품 덩어리

갠지스 강에 떠내려오는 거품 덩어리를 눈 밝은 사람이 살펴보면, 그것은 비어 있고 실체가 없고 알맹이가 없다.

느낌 ― 물방울

빗방울이 물 위에 떨어져 만드는 물방울은 생기는 즉시 꺼진다.

인식 ― 아지랑이

한낮의 아지랑이는 멀리서는 물처럼 보이지만 다가가면 아무것도 없다.

형성 ― 파초 줄기

파초 줄기는 알맹이를 찾아 껍질을 벗기고 또 벗겨도 끝내 알맹이가 없다.

의식 ― 마술

마술사가 네거리에서 부리는 마술은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유 하나하나가 그 무더기의 성격을 잘 짚는다. 느낌은 일어나는 즉시 꺼지는 물방울처럼 머물지 않고, 인식은 아지랑이처럼 실제와 다른 것을 그럴듯하게 그려 보이며, 형성은 파초처럼 겹겹이 쌓여 있으나 그 한가운데에 주인 노릇을 하는 알맹이가 없고, 의식은 마술처럼 하나의 ‘보는 자’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경은 이를 게송으로 요약한다.

Pheṇapiṇḍūpamaṃ rūpaṃ, vedanā bubbuḷūpamā;
marīcikūpamā saññā, saṅkhārā kadalūpamā;
māyūpamañca viññāṇaṃ, desitādiccabandhunā.

물질은 거품 덩어리와 같고, 느낌은 물방울과 같으며,
인식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으며,
의식은 마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께서 설하셨다.

「거품 덩어리 경」, SN 22.95

다섯 무더기와 취착의 다섯 무더기

첫째 진리는 다섯 무더기가 아니라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pañcupādānakkhandhā)가 괴로움이라고 했다. 둘째 편에서 이 수식어가 둘째 진리로 가는 다리라고 했는데, 이제 그 다리를 건너 볼 차례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 「무더기 경」(SN 22.48)은 앞에서 본 무더기의 정의에 이어 취착의 무더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Yaṃ kiñci, bhikkhave,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 yaṃ dūre santike vā sāsavaṃ upādāniyaṃ, ayaṃ vuccati rūpupādānakkhandho.

비구들이여,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 먼 것이든 가까운 것이든, 번뇌를 동반하고 취착의 대상이 되는 어떤 물질이든, 이것을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라고 한다.

「무더기 경」, SN 22.48

차이는 ‘번뇌를 동반하고 취착의 대상이 되는’(sāsava upādāniya)이라는 조건에 있다. 취착의 무더기는 번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무더기, 곧 갈애와 그릇된 견해가 ‘나’, ‘나의 것’으로 붙들 수 있는 무더기다. 『청정도론』 제14장은 이 구별을 이렇게 설명한다. 물질·느낌·인식·형성·의식은 세간의 것이든 출세간의 것이든 모두 무더기이지만, 성자의 도와 과를 이루는 정신 현상들처럼 번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취착의 무더기가 아니다.

그림 3-3무더기와 취착의 무더기

다섯 무더기 (khandha) 취착의 다섯 무더기 번뇌를 동반하고 취착의 대상이 되는 세간의 몸과 마음 = 첫째 진리의 괴로움 출세간의 정신 현상 (도와 과의 마음) 열반 무더기가 아님

첫째 진리가 괴로움이라 한 것은 바깥 원 전체가 아니라 안쪽 원, 곧 우리가 붙들고 있는 세간의 몸과 마음이다. 열반은 조건 지어지지 않은 것이므로 무더기 자체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첫째 진리에서 괴로움이라고 설한 것은 바로 취착의 무더기다. 곧 붓다는 성자의 출세간 마음까지 괴로움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붙들고 있는 세간의 몸과 마음을 괴로움이라고 한 것이다.

취착은 무더기인가

그러면 취착은 무더기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보름밤의 긴 경」(MN 109)에서 한 비구가 이를 묻자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Na kho, bhikkhu, taññeva upādānaṃ te pañcupādānakkhandhā, nāpi aññatra pañcahi upādānakkhandhehi upādānaṃ. Yo kho, bhikkhu,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chandarāgo taṃ tattha upādānaṃ.

비구여, 취착이 곧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인 것도 아니고,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와 따로 취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구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에 대한 욕망과 탐욕, 그것이 거기서의 취착이다.

「보름밤의 긴 경」, MN 109

이 대답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말한다. 먼저, 취착은 무더기 자체가 아니다. 무더기가 있다는 사실이 곧 괴로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더기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괴로움을 만든다. 다음으로, 취착은 무더기와 따로 어딘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취착 자체가 형성의 무더기에 속하는 정신 현상이기 때문이다. 무더기가 무더기를 붙드는 셈이다.

손과 쥔 것

뜨거운 쇠붙이를 쥐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괴로움은 쇠붙이가 있다는 사실에서 오지 않는다. 쇠붙이는 바닥에 놓여 있을 때도 뜨겁지만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괴로움은 그것을 움켜쥔 손에서 온다. 그렇다고 손을 잘라 낼 일은 아니다. 손을 펴면 된다. 붓다와 아라한도 몸과 마음이라는 쇠붙이를 지니고 살았지만, 그것을 움켜쥐는 손을 폈기에 괴로워하지 않았다.

이 가르침은 실천의 방향을 알려 준다.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몸과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없애는 것이다. 붓다와 아라한도 살아 있는 동안 다섯 무더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무더기는 더 이상 취착의 무더기가 아니었다. 둘째 편에서 본 ‘남음이 있는 열반’이 바로 이것이다.

스무 가지 유신견

같은 경에서 비구는 이어서 “어떻게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이 있게 되는가?”라고 묻는다. 유신견이란 다섯 무더기라는 몸, 곧 ‘있는 몸’(sakkāya)을 두고 거기에 자아가 있다고 보는 견해다. 붓다는 배우지 못한 범부가 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가 물질을 가진 것으로 여기거나,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여기거나, 자아가 물질 안에 있다고 여기며, 나머지 네 무더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여긴다고 답한다. 다섯 무더기 각각에 네 가지 방식이 있으므로 모두 스무 가지 유신견이 된다. 『무애해도』는 네 가지 방식을 각각 비유로 풀이한다.

표 3-2스무 가지 유신견
무더기무더기를 자아로
등불의 불꽃과 빛깔을 하나로 보듯
자아가 무더기를 가짐
나무가 그늘을 가지듯
자아 안에 무더기
꽃 안에 향기가 있듯
무더기 안에 자아
상자 안에 보석이 들었듯
물질1234
느낌5678
인식9101112
형성13141516
의식17181920

네 가지 방식의 비유는 『무애해도』(Paṭis)의 풀이를 따랐다.

표를 가로로 읽으면 ‘나’를 두고 우리가 품는 생각들이 얼마나 다양한지가 보인다. “이 몸이 곧 나다”라고 여길 때도 있고, “나는 몸을 가지고 있다”고 여길 때도 있으며, “나는 느낌을 겪는 자다”, “내 안에서 생각들이 일어난다”, “이 마음 깊은 곳에 진짜 내가 있다”고 여길 때도 있다. 표현은 달라도 모두 다섯 무더기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자아와 엮는 방식이며, 그 밖에 자아를 볼 다른 자리는 없다. 이는 다섯 무더기가 왜 ‘취착의’ 무더기인지, 그리고 이 분석이 왜 무아를 보기 위한 틀인지를 보여 준다. 유신견은 흐름에 든 이가 가장 먼저 끊는 번뇌이며, 이에 대해서는 견해를 다루는 여섯째 편에서 다시 살펴본다.

열두 감각장소

다섯 무더기가 존재를 이루는 재료를 분석한 틀이라면, 열두 감각장소(12처, dvādasāyatana)는 경험이 일어나는 자리를 분석한 틀이다. 붓다는 「일체 경」(SN 35.23)에서 이 틀이 ‘일체’, 곧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포괄한다고 설한다.

Kiñca, bhikkhave, sabbaṃ? Cakkhuñceva rūpā ca, sotañca saddā ca, ghānañca gandhā ca, jivhā ca rasā ca, kāyo ca phoṭṭhabbā ca, mano ca dhammā ca – idaṃ vuccati, bhikkhave, sabbaṃ. Yo, bhikkhave, evaṃ vadeyya – ‘ahametaṃ sabbaṃ paccakkhāya aññaṃ sabbaṃ paññāpessāmī’ti, tassa vācāvatthukamevassa.

비구들이여,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음과 법,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누군가 ‘나는 이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천명하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로만 하는 것일 뿐이다.

「일체 경」, SN 35.23

‘일체’라는 말에서 우리는 흔히 우주 만물을 떠올린다. 그러나 붓다가 말하는 일체는 여섯 쌍의 감각기능과 대상이다. 우리가 무엇이든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여섯 문을 통해서이며, 이 여섯 문 바깥의 ‘다른 일체’를 말하는 것은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감각장소’로 옮긴 āyatana는 ‘영역’, ‘터전’, ‘들어오는 곳’이라는 뜻이다. 『청정도론』 제15장은 이 말을 여러 방식으로 풀이하는데, 그 하나는 마음과 마음부수가 일어나는 문이자 그것들이 활동을 ‘펼치는’(tanoti)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는 것이다. 열두 감각장소는 안의 여섯 감각장소와 밖의 여섯 감각장소로 나뉜다.

표 3-3열두 감각장소
안의 감각장소 (六內處)밖의 감각장소 (六外處)일어나는 의식
눈 cakkhāyatana형색 rūpāyatana눈의 의식
귀 sotāyatana소리 saddāyatana귀의 의식
코 ghānāyatana냄새 gandhāyatana코의 의식
혀 jivhāyatana맛 rasāyatana혀의 의식
몸 kāyāyatana감촉 phoṭṭhabbāyatana몸의 의식
마음 manāyatana법 dhammāyatana마음의 의식

앞의 다섯 쌍은 이해하기 쉽다. 여기서 ‘눈’은 안구 전체가 아니라 형색을 받아들이는 감성 물질을, ‘몸’은 몸 전체에 퍼져 있어 감촉을 받아들이는 감성 물질을 가리킨다. 안경을 끼든 눈을 감든 형색을 받아들이는 그 섬세한 물질이 눈의 감각장소다.

여섯째 쌍이 이 틀의 핵심이다. 마음의 감각장소(manāyatana)는 모든 의식을 가리키며, 법의 감각장소(dhammāyatana)는 마음이 대상으로 삼는 것 가운데 앞의 다섯 감각 대상에 들지 않는 모든 것, 곧 느낌·인식·형성과 미세한 물질과 열반을 가리킨다. 붓다는 눈·귀·코·혀·몸에 이어 마음을 여섯째 감각기능으로 세움으로써, 생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하는 일도 눈이 형색을 보는 일과 같은 구조로 일어나는 하나의 감각 경험임을 밝혔다.

그림 3-4여섯 문과 여섯 대상

눈형색
귀소리
코냄새
혀맛
몸감촉
마음법

법: 느낌·인식·형성, 미세한 물질, 열반, 그리고 생각과 기억과 상상의 대상

붓다의 틀에서 생각은 감각과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다. 마음이라는 여섯째 문에 법이라는 대상이 부딪혀 일어나는 또 하나의 감각 경험이다.

우리는 흔히 감각과 생각을 다른 차원의 것으로 여긴다. 보고 듣는 것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이고, 생각은 안에서 ‘내가’ 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붓다의 틀에서 생각은 마음이라는 문에 법이라는 대상이 부딪혀 일어나는 경험이며, 눈이 형색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건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며 ‘나’가 아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소리를 골라서 듣지 못하듯, 떠오르는 생각도 대개 골라서 떠올리지 못한다.

그림 3-5어느 문으로 들어왔을까

아래의 경험은 여섯 문 가운데 어느 문에서 일어난 것일까? 하나씩 골라 보자. 마음의 문이 생각보다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눈여겨보자.

  1.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2. 어젯밤 들은 노래의 선율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된다

  3. 맨발에 닿는 마룻바닥의 차가움

  4. 다음 주 발표를 떠올리자 걱정이 밀려온다

  5. 부엌에서 풍겨 오는 된장찌개 냄새

  6. 노을이 물든 하늘의 붉은빛

  7. 한약을 머금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쓴맛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붓다는 이 열두 감각장소를 ‘세계’(loka)라고도 불렀다. 「무너짐 경」(SN 35.82)에서 한 비구가 어째서 세계라고 하느냐고 묻자 붓다는 “무너지기 때문에 세계라고 한다”(lujjatīti kho, bhikkhu, tasmā lokoti vuccati)고 답하며 눈과 형색과 눈의 의식이 무너진다고 설한다. loka라는 말을 ‘무너지다’(lujjati)와 엮어 풀이한 것이다. 세계란 단단히 버티고 선 무대가 아니라, 여섯 문에서 쉼 없이 일어나고 무너지는 경험들이다.

또 「로히땃사 경」(SN 2.26)에서는 걸어서 세계의 끝에 이르려 했던 로히땃사 신에게 이렇게 설한다. 로히땃사는 전생에 화살보다 빠른 걸음으로 백 년을 걸었지만 끝내 세계의 끝에 이르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Api cāhaṃ, āvuso, imasmiṃ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apemi lokasamudayañca lokanirodhañca lokanirodhagāminiñca paṭipadaṃ.

벗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지닌 바로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계와 세계의 일어남과 세계의 소멸과 세계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천명한다.

「로히땃사 경」, SN 2.26

이 구절은 둘째 편의 사성제와 꼭 같은 짜임이다. 괴로움 자리에 세계가, 괴로움의 일어남 자리에 세계의 일어남이 들어가 있다. 붓다에게 세계란 우주 공간이 아니라 여섯 문과 여섯 대상이 만나 경험이 일어나는 자리이며, 사성제는 바로 이 자리에서 실현된다. 걸어서는 세계의 끝에 이를 수 없지만, 이 몸과 마음 안에서 세계가 일어나고 무너지는 것을 꿰뚫어 보면 괴로움의 끝에 이를 수 있다.

감각장소에서 일어나는 일

「꿀 덩어리 경」(MN 18)은 이 자리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마하깟짜나 존자가 풀이한 이 과정을 차례대로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다.

그림 3-6눈과 형색에서 사량분별까지 (MN 18)

  1. 눈 + 형색문과 대상
  2. 눈의 의식둘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앎
  3. 접촉phassa셋의 만남
  4. 느낌접촉을 조건으로
  5. 인식느낀 것을 인식하고
  6. 생각인식한 것을 생각하며
  7. 사량분별papañca생각한 것을 부풀린다

그리고 그 사량분별에서 생겨난 인식과 관념들이 과거·현재·미래의 대상에 대해 그 사람을 덮치고 괴롭힌다. 앞의 단계들은 조건 따라 저절로 일어나지만, 뒤로 갈수록 ‘나’의 관심과 욕망이 덧붙어 경험이 부풀어 오른다.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의식이 일어나고, 이 셋의 만남이 접촉이며,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나고, 느낀 것을 인식하고, 인식한 것을 생각하며, 생각한 것을 사량분별한다. 사량분별(papañca)이란 하나의 경험을 두고 ‘나’, ‘내 것’, ‘저 사람은 왜’ 하며 생각을 끝없이 부풀려 나가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의 무심한 눈길 하나가 “나를 무시하는 걸까, 어제 일 때문일까, 다들 나를 그렇게 보는 걸까” 하는 생각의 가지로 번져 나가 하루 종일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그 예다.

열두 감각장소는 이렇게 다섯 무더기가 실제로 작동하는 현장이며, 갈애가 태어나는 현장이다. 그래서 붓다는 여섯 감각기능을 단속하는 것을 계에 포함시켰고, 위빳사나 수행의 대상 가운데 하나로 열두 감각장소를 들었다. 부풀어 오르기 전, 곧 ‘보인다’, ‘들린다’에서 멈추어 알아차리는 것이 감각의 문을 지키는 일이다.

열여덟 요소

열여덟 요소(18계, aṭṭhārasa dhātuyo)는 열두 감각장소에 여섯 가지 의식을 더한 것이다. 「여러 요소 경」(MN 115)에서 붓다는 비구가 요소에 능숙해야 지혜로운 이라고 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한다.

Aṭṭhārasa kho imā, ānanda, dhātuyo – cakkhudhātu, rūpadhātu, cakkhuviññāṇadhātu; sotadhātu, saddadhātu, sotaviññāṇadhātu; ghānadhātu, gandhadhātu, ghānaviññāṇadhātu; jivhādhātu, rasadhātu, jivhāviññāṇadhātu; kāyadhātu, phoṭṭhabbadhātu, kāyaviññāṇadhātu; manodhātu, dhammadhātu, manoviññāṇadhātu.

아난다여, 열여덟 가지 요소가 있다. 눈의 요소, 형색의 요소, 눈의 의식의 요소. 귀의 요소, 소리의 요소, 귀의 의식의 요소. 코의 요소, 냄새의 요소, 코의 의식의 요소. 혀의 요소, 맛의 요소, 혀의 의식의 요소. 몸의 요소, 감촉의 요소, 몸의 의식의 요소. 마음의 요소, 법의 요소, 마음의 의식의 요소이다.

「여러 요소 경」, MN 115

‘요소’로 옮긴 dhātu는 『청정도론』 제15장에 따르면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지닌 것’(attano sabhāvaṃ dhārenti)이라는 뜻이다. 광석에서 금이나 은 같은 여러 성분이 추출되듯,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경험에서 추출되는, 더 이상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성분들이 요소다. 『청정도론』은 이 낱말이 ‘중생이 아님’, ‘영혼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라고 덧붙인다. 요소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무아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셈이다. 열여덟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3-7열여덟 요소

감각기능의 요소
대상의 요소
의식의 요소
눈의 요소
형색의 요소
눈의 의식의 요소
귀의 요소
소리의 요소
귀의 의식의 요소
코의 요소
냄새의 요소
코의 의식의 요소
혀의 요소
맛의 요소
혀의 의식의 요소
몸의 요소
감촉의 요소
몸의 의식의 요소
마음의 요소
법의 요소
마음의 의식의 요소

붉게 칠한 일곱 칸, 곧 여섯 의식의 요소와 마음의 요소가 모두 ‘의식’이다. 열두 감각장소에서는 이 일곱이 마음의 감각장소 하나로 묶여 있었다.

열두 감각장소에서 마음의 감각장소가 모든 의식을 포괄했던 것과 달리, 열여덟 요소에서는 의식이 여섯 의식의 요소와 마음의 요소로 나뉜다. 주석서에 따르면 마음의 요소는 다섯 감각의 의식 앞뒤에서 대상을 받아들이는 몇 가지 마음을, 마음의 의식의 요소는 그 밖의 모든 의식을 가리킨다. 이 세부는 아비담마에서 마음이 대상을 인식해 가는 과정을 공부할 때 다시 중요해지지만, 지금은 의식이 여러 요소로 쪼개어졌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면 충분하다.

그림 3-8하나로 묶였던 의식이 일곱으로 나뉨

마음의 감각장소12처: 모든 의식을 하나로
눈의 의식귀의 의식코의 의식혀의 의식몸의 의식마음의 요소마음의 의식

이 틀에서 눈여겨볼 것은 의식이 여섯 가지로 나뉘어 각각 하나의 요소로 세워졌다는 점이다. 열두 감각장소에서는 의식 전체가 마음의 감각장소 하나로 묶였지만, 열여덟 요소에서는 눈의 의식과 귀의 의식이 서로 다른 요소다. 이는 ‘의식’이라는 것이 하나의 지속하는 실체가 아니라, 어느 문에 어느 대상이 부딪히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일어나는 앎임을 강조한다. 눈으로 볼 때의 앎과 귀로 들을 때의 앎은 같은 ‘나’가 이번엔 보고 이번엔 듣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조건에서 각기 일어난 서로 다른 의식이다.

장작불과 짚불

「갈애의 소멸 긴 경」(MN 38)에서 붓다는 사띠 비구의 오해를 바로잡으며 불의 비유를 든다.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느냐에 따라 이름이 붙는다. 장작을 조건으로 타면 장작불, 짚을 조건으로 타면 짚불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의식도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일어나면 눈의 의식, 귀와 소리를 조건으로 일어나면 귀의 의식이라 불린다. 장작불이 짚으로 옮겨 가 짚불이 되는 것이 아니듯, 하나의 의식이 눈에서 귀로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다.

세 가지 틀은 왜 따로 설해졌는가

다섯 무더기, 열두 감각장소, 열여덟 요소는 결국 같은 것을 나누는 세 가지 방식이다. 한 그루 나무를 뿌리·줄기·가지·잎으로 나눌 수도 있고, 껍질·목질·수액으로 나눌 수도 있듯이, 같은 경험을 다른 칼질로 나눈 것이다. 다섯 무더기의 물질은 열두 감각장소의 눈·귀·코·혀·몸과 형색·소리·냄새·맛·감촉, 그리고 법의 감각장소에 든 미세한 물질에 해당한다. 의식의 무더기는 마음의 감각장소, 곧 열여덟 요소의 일곱 가지 의식의 요소에 해당한다. 느낌·인식·형성의 무더기는 법의 감각장소이자 법의 요소에 든다.

아래에서 무더기를 하나씩 눌러 보면 그것이 열두 감각장소와 열여덟 요소의 어느 칸에 해당하는지가 밝아진다. 점선으로 밝아지는 칸은 그 칸의 일부만 해당한다는 뜻이다.

그림 3-9세 가지 틀의 대응 살펴보기

다섯 무더기

열두 감각장소

눈귀코혀몸형색소리냄새맛감촉마음법

열여덟 요소

눈의 요소귀의 요소코의 요소혀의 요소몸의 요소형색의 요소소리의 요소냄새의 요소맛의 요소감촉의 요소마음의 요소법의 요소눈의 의식귀의 의식코의 의식혀의 의식몸의 의식마음의 의식
무더기를 하나 골라 보자.
표 3-4세 가지 틀의 대응
다섯 무더기열두 감각장소열여덟 요소
물질눈·귀·코·혀·몸의 감각장소
형색·소리·냄새·맛·감촉의 감각장소
법의 감각장소 중 미세한 물질
다섯 감각기능의 요소
다섯 대상의 요소
법의 요소 중 미세한 물질
느낌·인식·형성법의 감각장소법의 요소
의식마음의 감각장소여섯 의식의 요소와 마음의 요소
(무더기에 들지 않음)법의 감각장소 중 열반법의 요소 중 열반

표의 마지막 줄이 보여 주듯, 열반은 다섯 무더기에는 들지 않지만 법의 감각장소와 법의 요소에는 든다. 다섯 무더기는 조건 지어진 것만을 포괄하는 틀인 반면, 열두 감각장소와 열여덟 요소는 마음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틀이기 때문이다. 열반은 조건 지어진 것이 아니지만, 마음이 알 수 있는 대상, 곧 도와 과의 마음이 실현하는 대상이다. 앞 절에서 「일체 경」이 열두 감각장소를 ‘일체’라 부른 까닭도 여기서 더 분명해진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른 칼질

같은 것을 왜 세 가지로 나누어 설했는가? 『청정도론』 제15장은 이를 듣는 이의 근기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마다 미혹된 곳이 다르다. 그래서 세 틀은 물질과 정신을 얼마나 자세히 나누느냐가 서로 다르다.

그림 3-10세 틀은 물질과 정신을 얼마나 자세히 나누는가

물질에 배당된 칸 정신에 배당된 칸

다섯 무더기
14
정신에 미혹하여 마음을 하나의 자아로 여기는 이에게
열두 감각장소
10½1½
물질에 미혹하여 몸을 자아로 여기는 이에게
열여덟 요소
10½7½
정신과 물질 모두에 미혹한 이에게

‘반’은 법의 감각장소(법의 요소)가 미세한 물질과 정신 현상을 함께 담고 있어 양쪽에 반씩 걸쳐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정신에 대해 미혹하여 마음을 하나의 자아로 여긴다. 이런 이에게는 정신을 느낌·인식·형성·의식의 넷으로 자세히 나누고 물질을 하나로 간략히 묶은 다섯 무더기의 가르침이 알맞다. 어떤 이는 물질에 대해 미혹하여 몸을 자아로 여긴다. 이런 이에게는 물질을 열 가지 반으로 자세히 나누고 정신을 마음의 감각장소와 법의 감각장소의 일부로 간략히 묶은 열두 감각장소의 가르침이 알맞다. 어떤 이는 정신과 물질 모두에 미혹하다. 이런 이에게는 둘 모두를 자세히 나눈 열여덟 요소의 가르침이 알맞다. 또 『청정도론』은 근기가 예리한 이에게는 간략한 무더기의 가르침을, 중간인 이에게는 감각장소의 가르침을, 둔한 이에게는 자세한 요소의 가르침을 설했다고도 말한다.

이 설명은 붓다의 분석이 고정된 체계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방편임을 다시 확인해 준다. 의사가 환자마다 다른 약을 쓰듯, 붓다는 사람마다 미혹된 곳을 겨냥하여 다른 칼질을 보여 주었다. 세 틀 가운데 어느 하나가 더 옳은 것이 아니다. 세 틀은 모두 하나의 목적, 곧 ‘나’라고 붙들고 있는 것이 사실은 조건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일 뿐임을 보게 하는 목적에 이바지한다.

분석에서 관찰로

이 편의 내용을 지식으로만 익히면 그것은 붓다가 「뱀의 비유 경」(MN 22)에서 경계한, 뱀의 꼬리를 잘못 붙잡는 일이 된다. 첫째 편에서 보았듯, 가르침을 따지고 논쟁하는 데 쓰려고 배우는 것은 뱀을 꼬리부터 붙잡아 도리어 물리는 것과 같다. 다섯 무더기와 감각장소와 요소는 외워 두는 목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기 경험에 적용해 보라고 주어진 틀이다. 예컨대 소리 하나가 들릴 때 이 틀을 써 보면 이렇다.

  1. ‘내가 듣는다’로 뭉뚱그리지 않는다소리가 들리는 순간을 하나의 덩어리로 넘기지 않고 멈추어 본다.
  2. 문과 대상과 앎을 가른다귀라는 문에 소리라는 대상이 부딪혀 귀의 의식이 일어났음을 본다.
  3. 접촉과 느낌을 알아본다셋의 만남인 접촉이 있고, 이어서 즐겁거나 괴롭거나 덤덤한 느낌이 있음을 안다.
  4. 인식과 형성을 알아본다‘새소리다’라고 알아보는 인식, 더 듣고 싶거나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의 움직임을 안다.
  5. 그 어디에도 주인이 없음을 본다이 모든 것이 조건 따라 일어나고 사라질 뿐, 그 뒤에서 듣고 있는 따로의 ‘나’가 없음을 본다.

이것이 이 틀을 실제로 쓰는 일이다. 붓다는 「무아의 특징 경」(SN 22.59)에서 다섯 무더기 하나하나에 대해 이렇게 바른 지혜로 보라고 설했다.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무아의 특징 경」, SN 22.59

그렇게 보려면 먼저 그것들이 무상하고 괴로움임을 보아야 한다. 「무아의 특징 경」에서도 붓다는 곧바로 ‘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먼저 다섯 무더기가 무상한지 항상한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다섯 무더기라는 재료를 알았으니, 이제 그 재료가 지닌 성질을 볼 차례다.

용어 정리

이 편에서 새로 만난 빠알리 용어들이다. 읽기는 이 강좌의 한글 표기 원칙을 따랐고, 용례는 이 편에 실린 원문에서 골랐다. 다섯 무더기의 다섯 이름은 앞으로 모든 편에서 되풀이하여 나오므로, 원어와 한역 이름을 함께 외워 두면 좋다.

표 3-5셋째 편의 용어 서른 개
번호원어읽기분류뜻용례
1khandha칸다무더기무더기, 온(蘊). 같은 종류의 현상을 한데 묶은 더미ayaṃ vuccati rūpakkhandho이것을 물질의 무더기라고 한다
2rūpa루빠무더기물질, 색(色). 변형되는 것Ruppatīti kho, bhikkhave, tasmā ‘rūpan’ti vuccati.변형되기 때문에 ‘물질’이라고 한다.
3vedanā웨다나무더기느낌, 수(受). 즐거움·괴로움·덤덤함의 색조Vedayatīti … ‘vedanā’ti vuccati.느끼기 때문에 ‘느낌’이라고 한다.
4saññā산냐무더기인식, 상(想). 특징을 붙잡아 알아보고 표시함Sañjānātīti … ‘saññā’ti vuccati.인식하기 때문에 ‘인식’이라고 한다.
5saṅkhārā상카라무더기형성, 행(行). 느낌·인식을 뺀 정신 작용 전체Saṅkhatamabhisaṅkharontīti … ‘saṅkhārā’ti vuccanti.형성된 것을 형성하기 때문에 ‘형성’이라고 한다.
6viññāṇa윈냐나무더기의식, 식(識). 대상을 앎Vijānātīti … ‘viññāṇan’ti vuccati.알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한다.
7mahābhūta마하부따물질네 가지 큰 요소, 사대(四大). 땅·물·불·바람의 성질cattāro mahābhūtā네 가지 큰 요소
8cetanā쩨따나형성의도. 형성의 무더기를 대표하는 마음부수cetanā의도
9nāmarūpa나마루빠무더기정신과 물질, 명색(名色)nāmarūpa정신과 물질
10upādānakkhandha우빠다낙칸다취착취착의 대상인 무더기, 취온(取蘊)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가 괴로움이다
11sāsava사사와취착번뇌를 동반한sāsavaṃ upādāniyaṃ번뇌를 동반하고 취착의 대상이 되는
12chandarāga찬다라가취착욕망과 탐욕pañcasu upādānakkhandhesu chandarāgo taṃ tattha upādānaṃ다섯 무더기에 대한 욕망과 탐욕, 그것이 거기서의 취착이다
13sakkāyadiṭṭhi삭까야딧티견해유신견(有身見). 다섯 무더기에 자아가 있다고 보는 견해sakkāyadiṭṭhi있는 몸에 대한 견해
14sammutisacca삼무띠삿짜두 진리관습적 진리. 세상의 약속에 따른 이름과 말sammutiṃ paramatthañca관습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
15paramatthasacca빠라맛타삿짜두 진리궁극적 진리. 더 나눌 수 없는 실재에 관한 말tatiyaṃ nūpalabbhati세 번째는 얻을 수 없다
16satta삿따두 진리중생. 무더기들 위에 붙은 관습적 이름hoti sattoti sammuti‘중생’이라는 관습적 이름이 있다
17āyatana아야따나감각장소감각장소, 처(處). 영역, 터전, 들어오는 곳dvādasāyatana열두 감각장소
18sabba삽바감각장소일체, 모든 것. 여섯 쌍의 감각기능과 대상Kiñca, bhikkhave, sabbaṃ?비구들이여, 무엇이 일체인가?
19cakkhu짝쿠감각장소눈. 형색을 받아들이는 감성 물질cakkhuñceva rūpā ca눈과 형색
20mano마노감각장소마음. 여섯째 감각기능mano ca dhammā ca마음과 법
21dhammāyatana담마야따나감각장소법의 감각장소. 다섯 감각 대상 밖의 모든 마음의 대상dhammāyatana법의 감각장소
22loka로까감각장소세계. 무너지는 것lujjatīti … lokoti vuccati무너지기 때문에 세계라고 한다
23phassa팟사과정접촉. 감각기능·대상·의식 셋의 만남tiṇṇaṃ saṅgati phasso셋의 만남이 접촉이다
24papañca빠빤짜과정사량분별. 경험을 두고 생각을 끝없이 부풀림papañca사량분별
25dhātu다뚜요소요소, 계(界).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지닌 것aṭṭhārasa kho imā, ānanda, dhātuyo아난다여, 열여덟 가지 요소가 있다
26manodhātu마노다뚜요소마음의 요소. 감각 의식 앞뒤에서 대상을 받아들이는 마음manodhātu마음의 요소
27manoviññāṇadhātu마노윈냐나다뚜요소마음의 의식의 요소manoviññāṇadhātu마음의 의식의 요소
28pheṇapiṇḍa페나삔다비유거품 덩어리. 물질의 비유Pheṇapiṇḍūpamaṃ rūpaṃ물질은 거품 덩어리와 같다
29marīcikā마리찌까비유아지랑이. 인식의 비유marīcikūpamā saññā인식은 아지랑이와 같다
30anattā아낫따무아무아(無我). 자아가 아님na meso attā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이 편의 전거 약어

이 편에서 인용한 경전과 논서의 약어다. ‘SN 22.79’는 『상윳따 니까야』 제22 상윳따의 일흔아홉 번째 경을, ‘MN 109’는 『맛지마 니까야』의 백아홉 번째 경을 가리킨다.

표 3-6전거 약어
약어원서명우리말 이름
MNMajjhimanikāya맛지마 니까야 (중간 길이로 설하신 경 모음)
SNSaṃyuttanikāya상윳따 니까야 (주제별로 묶은 경 모음)
PaṭisPaṭisambhidāmagga빠띠삼비다막가 (무애해도)
VismVisuddhimagga청정도론

이해도 점검

이 편의 핵심을 다섯 문제로 확인해 보자. 보기를 누르면 곧바로 채점되고, 그 아래의 해설을 펼쳐 볼 수 있다. 마지막 문제는 여러 절의 내용을 함께 엮어야 풀 수 있는 심화 문제다. 푼 기록은 이 기기에 남으므로 나중에 돌아와도 이어서 볼 수 있다.

0 / 5 정답
아직 푼 문제가 없다
첫째 문제

관습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의 구별에 비추어 볼 때, 붓다가 말하는 ‘나는 없다’의 뜻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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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 진리는 여러 요소가 모인 것에 세상의 약속에 따라 붙인 이름과 그 이름으로 하는 말이며, 거짓이 아니다. “철수가 걸어간다”는 말은 그 약속 안에서 참이고, 철수가 지은 업의 과보는 철수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가와 나는 틀렸다. 붓다 자신도 ‘나’, ‘여래’, ‘비구들이여’라고 말했다. 붓다가 부정하는 것은 다섯 무더기와 따로, 또는 다섯 무더기 안에 변치 않는 주인으로 있다고 여겨지는 ‘나’다. 라도 틀렸다. 테라와다 주석 전통에서 궁극적 진리는 바로 물질·마음·마음부수·열반이라는, 더 나눌 수 없이 실제로 존재하는 요소들에 관한 말이다.

둘째 문제

다섯 무더기 가운데 ‘형성’(saṅkhārā)의 무더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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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혀 버림 경」(SN 22.79)은 형성이 “형성된 것을 형성하기 때문에 형성이라고 한다”고 설하며, 형성이 물질을 물질이게끔, 느낌을 느낌이게끔 형성한다고 말한다. 다섯 무더기의 하나로서 형성은 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모든 정신 작용을 가리키고, 그 대표가 의도(cetanā)다. 아비담마는 여기에 쉰 가지 마음부수를 배당한다. 가는 인식, 나는 느낌, 다는 의식에 대한 설명이다.

셋째 문제

「보름밤의 긴 경」(MN 109)에서 붓다가 설한 ‘취착’과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의 관계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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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취착이 곧 다섯 무더기인 것도 아니고 다섯 무더기와 따로 취착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다섯 무더기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거기서의 취착이라고 답한다. 취착은 무더기 자체가 아니므로 가처럼 몸과 마음을 없앨 일이 아니라 욕망과 탐욕을 없앨 일이다. 또 취착 자체가 형성의 무더기에 속하는 정신 현상이므로 다처럼 무더기 바깥에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라도 틀렸다. 아라한은 다섯 무더기를 지니고 살지만 그것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없으므로, 그의 무더기는 더 이상 취착의 무더기가 아니다.

넷째 문제

열두 감각장소에서 ‘법의 감각장소’(dhammāyatana)에 들지 않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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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감각장소는 마음이 대상으로 삼는 것 가운데 앞의 다섯 감각 대상에 들지 않는 모든 것, 곧 느낌·인식·형성과 미세한 물질과 열반을 가리킨다. 눈의 의식을 비롯한 모든 의식은 법의 감각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감각장소(manāyatana)에 든다. 열여덟 요소로 말하면 눈의 의식은 ‘눈의 의식의 요소’라는 독립된 요소다. 열반이 다섯 무더기에는 들지 않지만 법의 감각장소에는 든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자.

다섯째 문제 (심화)

이 편의 내용에 비추어 다음 진술 가운데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른 것은?

  1. ㄱ. 열반은 조건 지어진 것이 아니므로 다섯 무더기에는 들지 않지만, 마음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열두 감각장소와 열여덟 요소에서는 법의 감각장소와 법의 요소에 든다.
  2. ㄴ. 어젯밤 들은 노래의 선율이 지금 머릿속에서 되풀이될 때, 그 선율을 아는 것은 귀의 의식이다.
  3. ㄷ. 열여덟 요소가 의식을 여러 요소로 나누어 세운 것은, 의식이 하나의 지속하는 실체가 아니라 어느 문에 어느 대상이 부딪히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일어나는 앎임을 드러낸다.
  4. ㄹ. 『청정도론』에 따르면, 물질에 미혹하여 몸을 자아로 여기는 이에게는 물질을 하나로 간략히 묶고 정신을 넷으로 자세히 나눈 다섯 무더기의 가르침이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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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은 옳다. 다섯 무더기는 조건 지어진 것만을 포괄하는 틀이므로 열반이 들지 않지만, 열두 감각장소와 열여덟 요소는 마음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틀이므로 열반이 법의 감각장소와 법의 요소에 든다. ㄷ도 옳다. 열두 감각장소에서 마음의 감각장소 하나로 묶였던 의식이 열여덟 요소에서는 일곱 요소로 나뉘며, 이는 눈으로 볼 때의 앎과 귀로 들을 때의 앎이 같은 ‘나’의 두 활동이 아니라 각기 다른 조건에서 일어난 서로 다른 의식임을 강조한다.

ㄴ은 틀렸다. 지금 귀에 닿는 소리가 없으니, 기억 속의 선율은 마음이라는 문에 떠오른 법이고 그것을 아는 것은 마음의 의식이다. 붓다가 마음을 여섯째 감각기능으로 세운 까닭이 여기 있다. ㄹ도 틀렸다. 『청정도론』은 물질에 미혹한 이에게는 물질을 열 가지 반으로 자세히 나눈 열두 감각장소의 가르침이, 정신에 미혹한 이에게 다섯 무더기의 가르침이 알맞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정답은 ㄱ, 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