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다 불교 입문 다섯째 편

제2부 진리의 틀

조건 따라 일어남

Paṭiccasamuppāda

12연기

스리랑카 사원의 문틀과 천장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넝쿨무늬, 리야웰라를 본뜬 무늬. 넝쿨 위의 열두 봉오리는 열두 고리를, 서로 기대어 끝없이 이어지는 넝쿨은 조건 따라 일어남을 나타낸다.

넷째 편의 끝에서 우리는 한 가지 물음을 남겨 두었다. 다섯 무더기가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며 그 안에 주인이 없다면, 그것들은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다음 순간과 다음 생을 일으키는가?

붓다는 이 물음에 “조건 따라 일어남”(paṭiccasamuppāda), 곧 연기(緣起)의 가르침으로 답했다. 연기는 붓다가 깨달음의 밤에 꿰뚫어 본 것이며, 붓다 스스로 “깊고 또 깊어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 가르침이다. 사리뿟따 존자는 아래와 같은 붓다의 말씀을 전하며 연기를 보는 것이 곧 법을 보는 것이라고 했고, 붓다는 「깟짜나곳따 경」에서 연기를 두 극단을 떠난 중도의 가르침이라고 불렀다. 이 편에서는 연기의 기본 원리에서 출발하여 열두 고리 하나하나를 살피고, 주석 전통이 이를 세 생에 걸쳐 풀이하는 방식을 입문 수준에서 소개한 뒤, 연기가 어떤 뜻에서 중도인지를 살펴본다. 둘째 편부터 쌓아 온 사성제와 다섯 무더기와 세 가지 특성이 이 편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모인다.

Y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i so dhammaṃ passati; yo dhammaṃ passati s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i.

조건 따라 일어남을 보는 이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이는 조건 따라 일어남을 본다.

「코끼리 발자국의 비유 긴 경」, MN 28

예상 학습 시간 약 45분. 본문 여섯 절, 이해도 점검 다섯 문제, 용어 카드 서른 장.

연기의 기본 원리

연기의 원어 paṭiccasamuppāda는 ‘의지하여’, ‘조건으로 하여’를 뜻하는 paṭicca와 ‘함께 일어남’을 뜻하는 samuppāda가 합쳐진 말이다.

paṭicca의지하여
조건으로 하여
samuppāda함께 일어남
(saṃ 함께 + uppāda 일어남)
paṭiccasamuppāda조건을 의지하여 함께 일어남
한역으로 연기(緣起)

『청정도론』 제17장은 이 말을, 어떤 현상이 홀로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떤 하나의 원인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 여러 조건이 함께 갖추어졌을 때 그 조건들을 의지하여 함께 일어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씨앗 하나만으로 싹이 트지 않는다. 흙과 물과 햇볕과 알맞은 온도가 함께 갖추어질 때 싹이 튼다. 그리고 그 싹은 누군가가 틔운 것이 아니라 조건들이 모였기에 튼 것이다.

원인 없이

저절로, 우연히 일어난다. ― 연기가 아니다.

하나의 원인에서

신의 뜻이나 하나의 근원에서 일어난다. ― 연기가 아니다.

여러 조건을 의지하여paṭicca

조건들이 함께 갖추어질 때 함께 일어난다. ― 이것이 연기다.

붓다는 이 원리를 다음의 짧은 공식으로 요약했으며, 이 공식은 경전 곳곳에 되풀이된다.

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uppādā idaṃ uppajjati;
imasmiṃ asati idaṃ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ṃ nirujjhati.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열 가지 힘 경」, SN 12.21 등

그림 5-1연기 공식의 두 절반과 사성제

앞 절반조건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 둘째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
뒤 절반조건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 셋째 진리: 괴로움의 소멸

이 공식은 두 가지를 말한다. 앞의 두 구절은 조건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이고, 뒤의 두 구절은 조건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에서 뒤의 구절은 앞의 구절만큼 중요하다. 만일 괴로움이 조건 없이 저절로 있는 것이거나 누군가의 뜻으로 정해진 것이라면 그것을 없앨 길은 없다.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우연이라면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괴로움이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 조건을 없앰으로써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 사성제의 둘째 진리와 셋째 진리는 이 공식의 앞뒤 절반에 각각 해당한다.

발견된 법칙

붓다는 이 원리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러한 법칙임을 분명히 했다. 넷째 편에서 세 가지 특성에 관해 본 것과 같은 정형구가 연기에 대해서도 설해진다.

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an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ṭhitāva sā dhātu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 idappaccayatā. Taṃ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여래들이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그 요소는 그대로 머물러 있으니, 이는 법의 확립성이요 법의 결정성이요 이것을 조건으로 함이다. 여래는 이것을 완전히 깨닫고 꿰뚫어 안다.

「조건 경」, SN 12.20

여기서 ‘이것을 조건으로 함’(idappaccayatā)이라는 말은 연기의 다른 이름이다. 붓다는 이 법칙을 발견하고 드러내었을 뿐이며, 이 법칙은 붓다가 없는 시대에도 그대로 작동한다.

그런데 이 원리를 무엇에 적용하는가가 중요하다. 붓다는 연기를 우주의 모든 인과관계에 대한 일반 이론으로 설한 것이 아니라, 괴로움이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고 어떤 조건에서 소멸하는가라는 하나의 문제에 적용했다. 별이 어떻게 생기는지, 비가 왜 내리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괴로움이 어디서 오고 어떻게 끝날 수 있는지를 보이려는 것이다. 둘째 편의 의사의 비유를 떠올리면, 연기는 병의 원인을 찾는 진단법에 해당한다. 그 적용의 표준형이 열두 고리로 이루어진 12연기다.

열두 고리

『상윳따 니까야』의 「인연 상윳따」(SN 12)는 연기를 다룬 경들을 모은 것으로, 그 첫 경은 12연기의 정형구를 이렇게 설한다.

Avijjāpaccayā, bhikkhave,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고,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접촉이 있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고,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난다.

「조건 따라 일어남 경」, SN 12.1

같은 경에서 붓다는 이어서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므로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므로 의식이 소멸하고 … 이와 같이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고 설한다. 앞의 것을 순관(順觀), 뒤의 것을 역관(逆觀)이라 부르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다룬다. 먼저 열두 고리 각각이 무엇인지를 「분석 경」(SN 12.2)의 정의에 따라 살펴보자. 아래의 원에서 고리를 하나씩 눌러 보면 그 정의가 나타나고 표의 해당 줄이 밝아진다.

그림 5-2열두 고리의 원

1무명2형성3의식4정신·물질5여섯감각장소6접촉7느낌8갈애9취착10존재11태어남12늙음·죽음전체 괴로움의무더기dukkhakkhandha

번뇌 업 과보

원 위의 고리를 하나 눌러 보자. 작은 원 두 개는 이 절 뒤에서 살펴볼 두 자리, 곧 느낌과 갈애 사이, 취착과 존재 사이를 표시한 것이다.
표 5-1열두 고리와 「분석 경」(SN 12.2)의 정의
고리정의
1 무명
avijjā (無明)
괴로움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한 무지. 곧 사성제를 모르는 것.
2 형성
saṅkhārā (行)
몸의 형성, 말의 형성, 마음의 형성. 주석서에 따르면 몸·말·마음으로 짓는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의도, 곧 업.
3 의식
viññāṇa (識)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혀의 의식, 몸의 의식, 마음의 의식의 여섯 가지 의식.
4 정신·물질
nāmarūpa (名色)
느낌·인식·의도·접촉·주의가 정신이고, 네 가지 큰 요소와 그것에서 파생된 물질이 물질이다.
5 여섯 감각장소
saḷāyatana (六入)
눈·귀·코·혀·몸·마음의 감각장소.
6 접촉
phassa (觸)
눈의 접촉에서 마음의 접촉까지 여섯 가지 접촉. 감각기능과 대상과 의식의 만남.
7 느낌
vedanā (受)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에서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까지 여섯 가지 느낌.
8 갈애
taṇhā (愛)
형색에 대한 갈애에서 법에 대한 갈애까지 여섯 가지 갈애.
9 취착
upādāna (取)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계율과 의례에 대한 취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의 네 가지 취착.
10 존재
bhava (有)
욕계의 존재, 색계의 존재, 무색계의 존재. 주석서는 이를 업으로서의 존재와 재생으로서의 존재로 나눈다.
11 태어남
jāti (生)
중생이 어떤 무리에서든 태어나고 생겨나고 무더기가 나타나며 감각장소를 얻는 것.
12 늙음·죽음
jarāmaraṇa (老死)
늙음(쇠퇴, 이가 빠짐, 머리가 셈 등)과 죽음(무더기가 무너지고 생명기능이 끊어짐). 이와 함께 근심·탄식·고통·절망이 있다.

이미 만난 개념들의 지도

표를 보면 열두 고리 가운데 상당수가 앞의 편들에서 이미 만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표 5-2열두 고리와 앞의 편들
고리앞에서 만난 자리
무명사성제를 모르는 것 (둘째 편, 바른 견해의 반대)
의식, 정신·물질다섯 무더기를 다른 방식으로 묶은 것 (셋째 편)
여섯 감각장소열두 감각장소의 안쪽 절반 (셋째 편)
접촉, 느낌「꿀 덩어리 경」에서 본 인식 과정의 첫 단계 (셋째 편)
갈애둘째 진리 (둘째 편)
취착‘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의 취착 (둘째·셋째 편)
태어남, 늙음·죽음첫째 진리의 첫 항목들 (둘째 편)

12연기는 새로운 개념들의 목록이 아니라, 앞서 배운 것들이 어떤 순서로 서로를 조건 짓는지를 보여 주는 지도다. 지금까지 따로따로 익힌 조각들이 여기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눈여겨볼 두 자리

이 지도에서 처음 배우는 이가 특히 눈여겨볼 곳은 두 군데다. 원 위에 작은 원으로 표시한 자리들이다.

첫째 자리느낌과 갈애 사이

접촉이 있으면 느낌이 일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라한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는 것은 필연이 아니다. 즐거운 느낌에 매달리고 괴로운 느낌을 밀어내는 반응, 곧 갈애가 일어나는 것은 무명이 있을 때뿐이다. 그래서 주석서는 열두 고리 가운데 느낌과 갈애 사이가 수행자가 윤회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하며, 위빳사나 수행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둘째 자리취착과 존재 사이

갈애가 자라나 굳어진 것이 취착이고, 취착에 이끌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는 것이 ‘업으로서의 존재’(kammabhava)이며, 그 업이 다음 생의 다섯 무더기를 일으키는 것이 ‘재생으로서의 존재’(upapattibhava)다. 여기서 이 생의 행위가 다음 생의 태어남으로 이어진다. 업과 재생에 대해서는 일곱째 편과 여덟째 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느낌과 갈애 사이의 틈

더운 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즐거운 느낌이 일어난다. 여기까지는 조건 따라 저절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곧이어 “더 불었으면”, “왜 그쳤지”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이미 갈애다. 즐거운 느낌을 즐거운 느낌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릴 뿐 더 원하는 마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사슬은 그 자리에서 다음 고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느낌과 갈애 사이의 이 작은 틈이 수행이 일하는 자리다.

무명은 첫 번째 원인인가

12연기가 무명에서 시작한다고 해서 무명이 세계의 첫 번째 원인, 곧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근원인 것은 아니다. 「바른 견해 경」(MN 9)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무명 역시 번뇌(āsava)를 조건으로 일어나며, 번뇌는 다시 무명을 조건으로 일어난다고 설한다. 무명과 갈애는 서로를 낳으며 돌고 도는 것이지 어느 하나가 절대적 시작이 아니다. 그래서 그림 5-2도 일부러 원으로 그렸다.

Anamataggoyaṃ, bhikkhave, saṃsāro. Pubbā koṭi na paññāyati avijjānīvaraṇānaṃ sattānaṃ taṇhāsaṃyojanānaṃ sandhāvataṃ saṃsarataṃ.

비구들이여, 이 윤회는 그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 치달리고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그 처음은 알려지지 않는다.

「시작을 알 수 없음 상윳따」, SN 15.1 등

『청정도론』 제17장은 붓다가 무명을 맨 앞에 둔 것은 그것이 첫 번째 원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윤회라는 바퀴를 설명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가장 뚜렷한 것을 골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 모든 그릇된 행위의 뿌리이므로 그것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한 것이다. 원을 그릴 때 어느 한 점에서 붓을 대야 하듯이.

순관과 역관

12연기는 두 방향으로 설해진다. 무명에서 늙음·죽음까지 조건이 결과를 낳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순관(anuloma)이고, 무명의 소멸에서 늙음·죽음의 소멸까지 조건이 사라지면 결과도 사라지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역관(paṭiloma)이다. 순관은 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역관은 괴로움이 어떻게 소멸하는지를 보여 준다. 첫째·둘째 진리가 순관에, 셋째·넷째 진리가 역관에 해당한다.

아래에서 두 방향을 한 고리씩 따라가 보자. ‘다음 고리’를 누를 때마다 사슬이 한 칸씩 이어지거나 한 칸씩 끊어진다.

그림 5-3순관과 역관 따라가기

  1.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고
  2.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3.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고
  4.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
  5.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접촉이 있고
  6.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고
  7.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고
  8.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고
  9.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고
  10.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고
  11.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겨난다.

보살이 거슬러 올라간 길

「대전기경」(DN 14)과 「도시 경」(SN 12.65)은 붓다가 깨달음 전에 이 사슬을 어떤 순서로 살폈는지를 전한다. 보살은 늙음·죽음이라는 괴로움에서 출발하여 “무엇이 있을 때 늙음·죽음이 있는가?”라고 거꾸로 물어 올라갔다. 둘째 편의 의사가 병에서 출발하여 원인을 찾아 올라가듯이.

그림 5-4“무엇이 있을 때 이것이 있는가?” (SN 12.65)

늙음·죽음태어남존재취착갈애느낌접촉여섯 감각장소 정신·물질의식

괴로움에서 출발하여 “무엇이 있을 때?”라고 한 고리씩 거슬러 물어 올라가다가, 의식과 정신·물질이 서로를 조건으로 기대어 있는 곳에 이른다.

늙음·죽음은 태어남이 있을 때 있고, 태어남은 존재가 있을 때 있으며,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 의식과 정신·물질에 이르렀을 때 보살은 의식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하고 정신·물질이 다시 의식을 조건으로 하여 서로 기대어 있음을 보았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paccudāvattati kho idaṃ viññāṇaṃ nāmarūpamhā, nāparaṃ gacchati. Ettāvatā jāyetha vā jīyetha vā mīyetha vā cavetha vā upapajjetha vā, yadidaṃ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의식은 정신·물질에서 되돌아오며 그 너머로 가지 않는다. 이만큼으로 태어나고 늙고 죽고 떠나고 다시 태어나니, 곧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으며 …’

「도시 경」, SN 12.65

의식과 정신·물질이 서로 기댄다는 발견은 셋째 편의 내용과 이어진다. 의식은 정신·물질 없이 홀로 떠돌 수 없고, 정신·물질은 의식 없이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이 되지 못한다. 사리뿟따 존자는 「갈대 다발 경」(SN 12.67)에서 이를 서로 기대어 선 두 갈대 다발에 비유했다. 하나를 치우면 다른 하나도 쓰러진다.

숲속의 옛 도시 (SN 12.65)

숲을 헤매던 사람이 옛사람들이 다니던 오래된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가 옛 도시를 찾아낸다. 그가 왕에게 알려 그 도시를 다시 세우게 하자, 도시는 번성하고 사람들로 가득 찬다. 붓다는 자신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 과거의 붓다들이 걸었던 옛길, 곧 팔정도를 발견하여 그 길을 따라 늙음·죽음과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연기가 앞의 편들에서 본 사성제와 팔정도와 하나의 가르침임을 보여 준다. 연기를 거슬러 올라간 끝에서 발견한 것은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괴로움과 그 일어남과 소멸과 길, 곧 사성제였다.

역관이 말하는 소멸

역관은 “무명이 남김없이 소멸하므로 형성이 소멸한다”로 시작한다. 여기서 소멸이란 무명이라는 현상이 잠시 없는 상태가 아니라, 도(道)의 지혜로 무명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뿌리 뽑힌 것을 가리킨다. 무명이 사라지면 그것을 뿌리로 하는 형성, 곧 재생을 일으키는 업이 지어지지 않고, 그러면 다음 생의 의식이 일어나지 않으며, 태어남이 없으므로 늙음·죽음도 없다. 이것이 아라한이 “태어남은 다했다”고 아는 것의 뜻이다.

다만 아라한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섯 감각장소와 접촉과 느낌을 지닌다. 역관이 말하는 것은 아라한에게 지금의 몸과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더 이상 갈애를 낳지 않으므로 이 사슬이 다음 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편의 ‘남음이 있는 열반’, 셋째 편의 ‘취착의 무더기가 아닌 무더기’와 같은 이야기다.

세 생에 걸친 이해

12연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든다. 태어남과 늙음·죽음이 사슬의 끝에 있는데, 그러면 무명과 형성은 태어나기 전에 있었다는 것인가? 그리고 의식에서 느낌까지는 지금의 이 몸과 마음인가? 테라와다의 주석 전통은 이 물음에 대해 열두 고리를 과거·현재·미래의 세 생에 배당하는 해석을 세웠다. 이를 흔히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 곧 세 생에 걸친 두 겹의 원인과 결과라고 부른다. 『청정도론』 제17장이 이 해석의 표준이며, 그 요지는 다음 표와 같다.

표 5-3세 생에 걸친 12연기의 배당 (『청정도론』 제17장)
시기고리성격회전
과거생1 무명원인
(과거의 다섯 원인)
번뇌의 회전
2 형성업의 회전
현재생3 의식, 4 정신·물질, 5 여섯 감각장소, 6 접촉, 7 느낌결과
(현재의 다섯 결과)
과보의 회전
8 갈애, 9 취착, 10 존재(업으로서의 존재)원인
(현재의 다섯 원인)
번뇌의 회전, 업의 회전
미래생11 태어남, 12 늙음·죽음
(10 재생으로서의 존재를 포함)
결과
(미래의 다섯 결과)
과보의 회전

이 해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과거생에서 사성제를 모르는 무명에 덮인 채 지은 업이 형성이다. 그 업의 결과로 이 생에서 재생연결의 의식이 일어나고, 그와 함께 정신·물질과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나며, 감각장소를 통해 접촉과 느낌을 겪는다. 여기까지가 과거의 업이 이 생에 맺은 결과다. 그런데 이 생에서 느낌을 겪으면서 우리는 다시 갈애를 일으키고 취착하며 그에 따라 업, 곧 업으로서의 존재를 짓는다. 이것이 이 생에서 짓는 새로운 원인이다. 그 결과 다음 생의 태어남과 늙음·죽음이 있게 된다.

이렇게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를 낳고, 현재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를 낳으므로 ‘두 겹의 원인과 결과’이며, 그 원인과 결과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있으므로 ‘세 생’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느낌은 과거에 뿌린 씨앗의 열매이고, 그 느낌에 대해 지금 일으키는 갈애는 미래에 거둘 열매의 씨앗이다.

스무 가지 모습, 세 가지 연결, 세 가지 회전

『청정도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과거의 원인이 실제로는 무명과 형성만이 아니라 갈애·취착·존재까지 다섯이고(과거생에도 갈애와 취착이 있어야 업을 지었을 것이므로), 현재의 원인도 갈애·취착·존재에 무명과 형성을 더한 다섯이라고 설명한다. 열두 고리는 대표만 드러낸 것이고, 한 번 드러난 것은 다른 자리에도 숨어 있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두 가지 보기를 바꾸어 가며 비교해 보자.

그림 5-5세 생에 걸친 두 겹의 원인과 결과

과거생
현재생
미래생
과거의 원인
1 무명2 형성
현재의 결과
3 의식4 정신·물질5 여섯 감각장소6 접촉7 느낌
미래의 결과
11 태어남12 늙음·죽음
현재의 원인
8 갈애9 취착10 존재

번뇌의 회전 업의 회전 과보의 회전 점선 =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함께 있는 것

이렇게 과거의 다섯 원인, 현재의 다섯 결과, 현재의 다섯 원인, 미래의 다섯 결과를 합쳐 ‘스무 가지 모습’이라 하고, 과거의 원인과 현재의 결과 사이, 현재의 결과와 현재의 원인 사이, 현재의 원인과 미래의 결과 사이의 세 곳을 ‘세 가지 연결’이라 한다. 둘째 연결, 곧 현재의 결과인 느낌과 현재의 원인인 갈애 사이가 제2절에서 본 ‘끊을 수 있는 자리’다.

또 열두 고리를 번뇌·업·과보의 세 가지 회전(vaṭṭa)으로 묶기도 한다. 무명·갈애·취착은 번뇌의 회전이고, 형성과 업으로서의 존재는 업의 회전이며, 나머지는 과보의 회전이다.

그림 5-6세 가지 회전

번뇌kilesavaṭṭa무명 · 갈애 · 취착
업kammavaṭṭa형성 · 업으로서의 존재
과보vipākavaṭṭa의식 · 정신·물질 · 여섯 감각장소 · 접촉 · 느낌 · 태어남 · 늙음·죽음

번뇌가 업을 낳고, 업이 과보를 낳으며, 과보 속에서 다시 번뇌가 일어난다. 이 세 회전이 멈추지 않고 도는 것이 윤회다.

이 해석의 근거와 다른 읽기

이 세 생의 해석은 경전 자체가 직접 설한 것은 아니지만 경전의 여러 대목에 뿌리를 두고 있다. 12연기의 열두 고리 가운데 태어남과 늙음·죽음이 이 생의 태어남과 죽음을 뜻한다면 그 조건인 존재와 취착과 갈애는 그 전에 있었어야 하고, 이 생의 의식과 정신·물질이 그 조건인 형성에서 온다면 형성은 그 전에 지어졌어야 한다. 「갈애의 소멸 긴 경」(MN 38)에서 붓다가 사띠 비구의 의식 윤회설을 물리친 뒤 태아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12연기로 설하는 것도 이 해석의 근거가 된다.

오늘날 일부에서는 12연기를 한순간이나 이 한 생 안에서만 일어나는 심리 과정으로 읽기도 하며, 실제로 주석 전통도 열두 고리가 한 마음 순간에 모두 일어나는 방식을 함께 설명한다. 그러나 테라와다 전통은 세 생의 해석을 12연기의 표준 해석으로 삼으며, 이 강좌도 그것을 따른다. 그 해석 없이는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다”는 첫 고리가 다음 생의 태어남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해석은 앞으로 볼 윤회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12연기가 보여 주는 것은 죽음에서 다음 생으로 어떤 영혼이 옮겨 가는 과정이 아니라, 무명과 갈애 아래 지어진 업이라는 조건이 다음 생의 의식이라는 결과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옮겨 가는 것은 없고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만 있다. 여덟째 편에서 이 과정을 죽음의 순간과 재생연결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살펴볼 것이다.

연기와 두 극단을 떠난 중도

「초전법륜경」의 중도가 쾌락과 고행이라는 실천의 두 극단을 떠난 것이었다면, 연기는 견해의 두 극단을 떠난 중도다. 「깟짜나곳따 경」(SN 12.15)에서 깟짜나곳따 존자가 바른 견해가 무엇이냐고 묻자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Dvayanissito khvāyaṃ, kaccāna, loko yebhuyyena – atthitañceva natthitañca. Lokasamudayaṃ kho, kaccāna,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o yā loke natthitā sā na hoti. Lokanirodhaṃ kho, kaccāna,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o yā loke atthitā sā na hoti. … ‘Sabbaṃ atthī’ti kho, kaccāna, ayameko anto. ‘Sabbaṃ natthī’ti ayaṃ dutiyo anto. Ete te, kaccāna, 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ṃ deseti –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

깟짜나여, 이 세상은 대부분 두 가지에 의지하고 있으니, 곧 있음과 없음이다. 깟짜나여,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는 이에게는 세상에 대한 없음이 있지 않다. 깟짜나여, 세상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는 이에게는 세상에 대한 있음이 있지 않다. … 깟짜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것이 하나의 극단이고, ‘모든 것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나여, 여래는 이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중간으로 법을 설한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고 …’

「깟짜나곳따 경」, SN 12.15

‘모든 것은 있다’는 극단은 현상들 뒤에 변치 않고 존재하는 실체나 자아를 세우는 견해, 곧 넷째 편에서 본 상견이다. ‘모든 것은 없다’는 극단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끊어진다는 견해, 곧 단견이다. 붓다는 이 둘 사이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 아니라 두 견해가 공통으로 전제하는 것, 곧 ‘있다’거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고정된 무엇을 떠났다.

있음과 없음으로 보는 눈

“이것은 있다” ― 고정된 무엇이 있다고 붙든다. (상견)

“이것은 없다” ― 있던 것이 아주 끊어진다고 여긴다. (단견)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보는 눈

세상의 일어남을 보는 이는 ‘없다’고 하지 않는다. 조건 따라 실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의 소멸을 보는 이는 ‘있다’고 하지 않는다. 조건 따라 실제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을 보는 이는 그것이 조건 따라 일어났으므로 ‘없다’고 할 수 없고, 조건 따라 사라지므로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있음과 없음 대신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는 것, 이것이 연기라는 중도다. 둘째 편의 중도가 몸이라는 축을 떠났고 넷째 편의 무아가 ‘자아’라는 축을 떠났듯, 연기는 ‘있음과 없음’이라는 축을 떠난다.

괴로움은 누가 지었는가

같은 중도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물음에서도 나타난다. 「나체 수행자 깟사빠 경」(SN 12.17)에서 깟사빠는 붓다에게 네 가지를 차례로 묻는다. 붓다는 네 가지 모두에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답한다.

각 물음을 눌러 붓다의 답을 펼쳐 보자.

괴로움이 스스로 지은 것이라는 말은 괴로움을 짓는 자와 겪는 자가 같은 하나의 자아라는 상견에 떨어지고, 남이 지은 것이라는 말은 짓는 자와 겪는 자가 다르다는 단견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붓다는 이 두 극단을 떠나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고 …”라고 설한다. 괴로움은 누가 지은 것이 아니라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이다.

‘누가’가 아니라 ‘무엇을 조건으로’

「모리야팍구나 경」(SN 12.12)에서 한 비구가 “누가 접촉합니까?”, “누가 느낍니까?”라고 묻자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 나는 ‘누가 느낀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묻지 말아야 할 물음

누가 접촉하는가?

누가 느끼는가?

누가 갈애하는가?

바른 물음

무엇을 조건으로 접촉이 있는가? ― 여섯 감각장소

무엇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는가? ― 접촉

무엇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는가? ― 느낌

연기는 행위자를 묻는 물음을 조건을 묻는 물음으로 바꾼다. 이 점은 연기와 무아가 하나의 가르침임을 보여 준다. 무아가 ‘변치 않는 주인이 없다’는 것이라면, 연기는 ‘주인 없이도 모든 것이 조건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다. 주인이 없다는 말만 들으면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조건 따라 일어난다는 말을 함께 들으면 업의 과보도 수행의 결실도 모두 조건 따라 어김없이 일어남을 알게 된다.

싹을 틔우는 자는 없다

『청정도론』은 12연기의 설명 끝에서 이 뜻을 이렇게 요약한다. 열두 고리 안에 윤회를 하는 자도 없고 윤회를 시키는 자도 없으며, 다만 원인과 조건이 갖추어질 때 결과가 일어날 뿐이다. 씨앗과 흙과 물이 있을 때 싹이 트지만 싹을 틔우는 자가 따로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싹이 아무렇게나 트는 것도 아니다. 볍씨에서는 벼가, 보리씨에서는 보리가 난다. 주인이 없어도 법칙은 어김이 없다.

연기를 보는 이는 법을 본다

「대인연경」(Mahānidāna Sutta, DN 15)은 아난다 존자가 붓다에게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연기는 깊고 또 깊어 보이지만, 저에게는 아주 명료하게 보입니다”라고 말씀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붓다의 대답은 준엄하다.

Mā hevaṃ, ānanda, avaca, mā hevaṃ, ānanda, avaca. Gambhīro cāyaṃ, ānanda, paṭiccasamuppādo gambhīrāvabhāso ca. Etassa, ānanda, dhamm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ayaṃ pajā tantākulakajātā kulagaṇṭhikajātā muñjapabbajabhūtā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saṃsāraṃ nātivattati.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이 연기는 깊고 또 깊어 보인다. 아난다여,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중생들은 실타래처럼 뒤엉키고 실뭉치처럼 얽히고 문자 풀과 밧바자 풀처럼 되어, 처참한 곳과 나쁜 곳과 파멸처인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인연경」, DN 15

주석서는 붓다가 아난다 존자를 꾸짖은 까닭을, 아난다가 연기를 명료하게 이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힘만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과 전생의 공덕 덕분임을 알게 하고, 무엇보다 연기가 이해하기 쉬운 가르침이라고 여겨 다른 이들이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풀이한다.

실제로 연기는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는 공식만 놓고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그 공식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적용하여 느낌이 갈애를 낳고 갈애가 취착을 낳는 것을 실제로 보고, 무명과 갈애를 뿌리로 하는 윤회의 바퀴 전체를 꿰뚫어 보는 것은 붓다가 깨달음의 밤에 이룬 일이다. 넷째 편에서 세 특성을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과 ‘지혜로 보는 것’이 다르다고 했듯, 연기를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지혜로 꿰뚫어 보는 것은 다르다.

사슬이면서 사다리

그 꿰뚫어 봄이 어디로 이끄는지를 「의지처 경」(Upanisā Sutta, SN 12.23)이 보여 준다. 이 경은 12연기의 순관을 설한 뒤에 늙음·죽음에서 멈추지 않고 사슬을 더 이어 간다.

그림 5-7괴로움에서 해탈까지 이어지는 조건들 (SN 12.23)

  1. 괴로움12연기의 끝, 늙음·죽음의 괴로움
  2. 믿음saddhā
  3. 환희pāmojja
  4. 희열pīti
  5. 고요함passaddhi
  6. 행복sukha
  7. 삼매samādhi
  8. 있는 그대로의 지견yathābhūtañāṇadassana
  9. 염오nibbidā
  10. 탐욕의 빛바램virāga
  11. 해탈vimutti
  12. 번뇌가 다했다는 앎khaye ñāṇa

아래에서 위로 읽는다. 각 단계는 바로 아래 단계를 조건으로 일어난다. 괴로움이 사다리의 첫 칸이라는 점을 눈여겨보자.

괴로움을 조건으로 믿음이 있고, 믿음을 조건으로 환희가, 환희를 조건으로 희열이, 희열을 조건으로 고요함이, 고요함을 조건으로 행복이, 행복을 조건으로 삼매가, 삼매를 조건으로 있는 그대로의 지견이, 있는 그대로의 지견을 조건으로 염오가, 염오를 조건으로 탐욕의 빛바램이, 탐욕의 빛바램을 조건으로 해탈이, 해탈을 조건으로 번뇌가 다했다는 앎이 있다.

이 경은 같은 연기의 원리가 괴로움을 낳는 데만이 아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도 작동함을 보여 준다. 괴로움이 있기에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믿음이 일어나고, 그 믿음이 조건이 되어 마침내 해탈에 이른다. 괴로움은 사슬의 끝이면서 동시에 사다리의 첫 칸이다. 넷째 편에서 본 염오·빛바램·해탈의 공식이 이 사다리의 윗부분에 그대로 들어 있다는 점도 눈여겨보자. 조건 따라 일어남은 우리를 가두는 사슬이기도 하지만, 그 원리를 바르게 쓰면 우리를 풀어 주는 사다리이기도 하다.

제2부를 마치며

이 편 첫머리의 “연기를 보는 이는 법을 본다”는 말은 그러므로 연기가 붓다 가르침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꿰는 원리라는 뜻이다.

그림 5-8연기로 꿰어 본 제2부

조건 따라 일어남paṭiccasamuppāda
사성제괴로움과 그 원인의 조건 관계둘째 편
다섯 무더기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들셋째 편
세 가지 특성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들의 성질넷째 편
팔정도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조건둘째 편

사성제는 괴로움과 그 원인의 조건 관계이고, 다섯 무더기는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들이며, 세 가지 특성은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들의 성질이고, 팔정도는 조건 따라 일어나는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조건이다. 여기까지 우리는 붓다 가르침의 이론적 틀을 모두 살펴본 셈이다. 제2부 ‘진리의 틀’은 이 편으로 마무리된다. 다음 편부터 시작되는 제3부에서는 이 틀에 비추어 무엇이 바른 견해이고 무엇이 그릇된 견해인지를 가려 보고, 업과 윤회의 가르침을 흔한 오해들과 구별하여 정확히 이해하는 일로 나아간다.

용어 정리

이 편에서 새로 만난 빠알리 용어들이다. 읽기는 이 강좌의 한글 표기 원칙을 따랐고, 용례는 이 편에 실린 원문에서 골랐다. 열두 고리는 정형구의 ‘~paccayā ~’라는 짜임째로 외워 두면, 원문을 읽을 때 사슬이 저절로 이어진다.

표 5-4다섯째 편의 용어 서른 개
번호원어읽기분류뜻용례
1paṭiccasamuppāda빠띳짜사뭅빠다연기조건 따라 일어남, 연기(緣起)Y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i so dhammaṃ passati조건 따라 일어남을 보는 이는 법을 본다
2idappaccayatā이답빳짜야따연기이것을 조건으로 함. 연기의 다른 이름dhammaniyāmatā idappaccayatā법의 결정성이요 이것을 조건으로 함이다
3paccaya빳짜야연기조건, 연(緣)avijjāpaccayā saṅkhārā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다
4avijjā아윗자열두 고리무명(無明). 사성제를 모르는 것avijjāpaccayā무명을 조건으로
5saṅkhārā상카라열두 고리형성(行). 몸·말·마음으로 짓는 의도, 곧 업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다
6viññāṇa윈냐나열두 고리의식(識). 여섯 가지 의식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다
7nāmarūpa나마루빠열두 고리정신·물질(名色)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다
8saḷāyatana살라야따나열두 고리여섯 감각장소(六入)saḷāyatanapaccayā phasso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접촉이 있다
9phassa팟사열두 고리접촉(觸)phassapaccayā vedan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10vedanā웨다나열두 고리느낌(受)vedanāpaccayā taṇhā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11taṇhā딴하열두 고리갈애(愛)taṇhāpaccayā upādānaṃ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
12upādāna우빠다나열두 고리취착(取). 네 가지 취착upādānapaccayā bhavo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
13bhava바와열두 고리존재(有)bhavapaccayā jāti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14jāti자띠열두 고리태어남(生)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
15jarāmaraṇa자라마라나열두 고리늙음·죽음(老死)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늙음·죽음과 근심·탄식·고통·절망
16kammabhava깜마바와존재업으로서의 존재. 취착에 이끌려 짓는 업kammabhava업으로서의 존재
17upapattibhava우빠빳띠바와존재재생으로서의 존재. 업이 일으키는 다음 생의 무더기upapattibhava재생으로서의 존재
18āsava아사와연기번뇌, 흘러나오는 것āsavasamudayā avijjāsamudayo번뇌가 일어나므로 무명이 일어난다
19saṃsāra상사라윤회윤회(輪廻).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Anamataggoyaṃ, bhikkhave, saṃsāro.비구들이여, 이 윤회는 그 시작을 알 수 없다.
20anuloma아눌로마관찰순관(順觀). 일어남의 방향anuloma순관
21paṭiloma빠띨로마관찰역관(逆觀). 소멸의 방향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므로 형성이 소멸한다
22vaṭṭa왓따세 생회전, 굴러감vaṭṭa회전
23kilesavaṭṭa낄레사왓따세 생번뇌의 회전. 무명·갈애·취착kilesavaṭṭa번뇌의 회전
24kammavaṭṭa깜마왓따세 생업의 회전. 형성·업으로서의 존재kammavaṭṭa업의 회전
25vipākavaṭṭa위빠까왓따세 생과보의 회전. 나머지 고리들vipākavaṭṭa과보의 회전
26atthitā앗티따중도있음. 상견의 극단‘Sabbaṃ atthī’ti … ayameko anto.‘모든 것은 있다’는 것이 하나의 극단이다.
27natthitā낫티따중도없음. 단견의 극단‘Sabbaṃ natthī’ti ayaṃ dutiyo anto.‘모든 것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28majjhena맛제나중도중간으로, 가운데로majjhena tathāgato dhammaṃ deseti여래는 중간으로 법을 설한다
29upanisā우빠니사사다리의지처, 가까운 조건Upanisā Sutta「의지처 경」
30yathābhūtañāṇadassana야타부따냐나닷사나사다리있는 그대로의 지견samādhūpanisaṃ yathābhūtañāṇadassanaṃ삼매를 의지처로 하는 있는 그대로의 지견

이 편의 전거 약어

이 편에서 인용한 경전과 논서의 약어다. ‘SN 12.1’은 『상윳따 니까야』 제12 상윳따, 곧 「인연 상윳따」의 첫 번째 경을, ‘DN 15’는 『디가 니까야』의 열다섯 번째 경을 가리킨다.

표 5-5전거 약어
약어원서명우리말 이름
DNDīghanikāya디가 니까야 (길게 설하신 경 모음)
MNMajjhimanikāya맛지마 니까야 (중간 길이로 설하신 경 모음)
SNSaṃyuttanikāya상윳따 니까야 (주제별로 묶은 경 모음)
VismVisuddhimagga청정도론

이해도 점검

이 편의 핵심을 다섯 문제로 확인해 보자. 보기를 누르면 곧바로 채점되고, 그 아래의 해설을 펼쳐 볼 수 있다. 마지막 문제는 여러 절의 내용을 함께 엮어야 풀 수 있는 심화 문제다. 푼 기록은 이 기기에 남으므로 나중에 돌아와도 이어서 볼 수 있다.

0 / 5 정답
아직 푼 문제가 없다
첫째 문제

연기의 공식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해설 펼치기

공식의 앞 절반은 조건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 뒤 절반은 조건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것이다. 괴로움이 조건 없이 저절로 있거나 누군가의 뜻으로 정해진 것이라면 없앨 길이 없지만,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면 조건을 없애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 그래서 뒤 절반은 앞 절반만큼 중요하다(나). 붓다는 이 원리를 우주론이 아니라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이라는 하나의 문제에 적용했다(가). 『청정도론』은 연기가 원인 없이도, 하나의 원인에서도 아니라 여러 조건이 갖추어져 함께 일어난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라).

둘째 문제

주석서가 수행자가 윤회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하는 곳은 열두 고리 가운데 어디인가?

해설 펼치기

감각장소가 있으면 접촉이 있고, 접촉이 있으면 느낌이 일어나는 것은 아라한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는 것은 필연이 아니다. 즐거운 느낌에 매달리고 괴로운 느낌을 밀어내는 반응은 무명이 있을 때만 일어난다. 그래서 느낌과 갈애 사이가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자리이며, 위빳사나 수행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 있다. 세 생의 해석으로 말하면 이곳은 현재의 결과와 현재의 원인을 잇는 둘째 연결이다.

셋째 문제

12연기가 무명에서 시작하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해설 펼치기

「바른 견해 경」(MN 9)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무명 역시 번뇌를 조건으로 일어나며, 번뇌는 다시 무명을 조건으로 일어난다고 설한다. 붓다는 “이 윤회는 그 시작을 알 수 없다”(SN 15)고 거듭 설했으므로 가와 라는 틀렸다. 『청정도론』은 무명을 맨 앞에 둔 것이 첫 번째 원인이어서가 아니라 설명의 출발점으로 가장 뚜렷한 것을 골랐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다도 틀렸다. 역관이 보여 주듯 무명은 도의 지혜로 남김없이 소멸할 수 있다.

넷째 문제

『청정도론』의 세 생에 걸친 해석(삼세양중인과)에서 ‘현재의 다섯 결과’에 해당하는 것은?

해설 펼치기

과거생에 무명에 덮여 지은 업(형성)의 결과로 이 생에서 재생연결의 의식이 일어나고, 그와 함께 정신·물질과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나며, 감각장소를 통해 접촉과 느낌을 겪는다. 이 다섯이 현재의 다섯 결과다. 가는 과거의 다섯 원인, 나는 현재의 다섯 원인이다. 『청정도론』은 두 원인 묶음 모두가 실제로는 무명·형성·갈애·취착·존재의 다섯을 갖춘다고 설명한다. 미래의 다섯 결과는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 대표되지만, 그 내용은 현재의 다섯 결과와 같은 의식에서 느낌까지다.

다섯째 문제 (심화)

이 편의 내용에 비추어 다음 진술 가운데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른 것은?

  1. ㄱ. 「깟짜나곳따 경」에서 붓다는 ‘모든 것은 있다’와 ‘모든 것은 없다’라는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이는 연기를 중간으로 설했다.
  2. ㄴ. 「모리야팍구나 경」에 따르면 연기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누가 느끼는가?”를 물어 느끼는 주체를 밝혀야 한다.
  3. ㄷ. 역관에 따르면 무명이 소멸한 아라한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여섯 감각장소와 접촉과 느낌을 지니지 않는다.
  4. ㄹ. 「의지처 경」은 괴로움을 조건으로 믿음이 일어나 마침내 해탈에 이르는 사슬을 보여 줌으로써, 연기의 원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도 작동함을 드러낸다.

해설 펼치기

ㄱ은 옳다. 세상의 일어남을 보는 이에게는 ‘없음’이, 세상의 소멸을 보는 이에게는 ‘있음’이 있지 않으며, 여래는 두 극단을 떠나 중간으로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고…”라고 설한다. ㄹ도 옳다. 괴로움은 사슬의 끝이면서 사다리의 첫 칸이며, 믿음·환희·희열·고요함·행복·삼매·지견·염오·빛바램·해탈로 이어진다.

ㄴ은 틀렸다. 붓다는 “누가 느낍니까?”라는 물음을 타당하지 않다고 하며 “무엇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연기는 행위자를 묻는 물음을 조건을 묻는 물음으로 바꾼다. ㄷ도 틀렸다. 아라한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섯 감각장소와 접촉과 느낌을 지닌다. 다만 느낌이 더 이상 갈애를 낳지 않으므로 사슬이 다음 생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정답은 ㄱ, 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