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다 불교 입문 여섯째 편

제3부 바른 견해

바른 견해와 그릇된 견해

Sammādiṭṭhi · Micchādiṭṭhi

길의 첫 요소

「범망경」의 그물 비유를 본뜬 무늬. 촘촘한 그물이 작은 연못을 덮으면 그 안의 큰 물고기가 모두 갇히듯, 자아와 세계에 대한 온갖 견해가 예순두 가지 그물코 안에 갇힌다.

제2부에서 우리는 붓다 가르침의 이론적 틀을 살펴보았다. 제3부는 그 틀에 비추어 무엇이 바른 견해이고 무엇이 그릇된 견해인지를 가리고, 업과 윤회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바친다.

견해에서 시작하는 까닭은 팔정도가 바른 견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둘째 편에서 보았듯 붓다는 「위대한 마흔 가지 경」(MN 117)에서 “바른 견해가 앞장선다”고 말했다. 무엇이 괴로움이고 무엇이 그 원인인지에 대한 견해가 그릇되면 그 뒤의 모든 노력이 방향을 잃는다. 반대로 붓다는 아래의 말처럼, 바른 견해만큼 유익한 법을 일으키고 해로운 법을 없애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 편에서는 먼저 견해라는 말의 뜻을 살핀 뒤, 두 가지 바른 견해, 상견과 단견, 유신견, 결정된 그릇된 견해, 「범망경」의 예순두 가지 견해,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을 차례로 살펴보고, 끝으로 바른 견해마저 붙들지 말라는 붓다의 경고를 짚어 본다.

Nāhaṃ, bhikkhave, aññaṃ ekadhammampi samanupassāmi yena anuppannā vā kusalā dhammā uppajjanti uppannā vā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yathayidaṃ, bhikkhave, sammādiṭṭhi.

비구들이여, 나는 바른 견해만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해로운 법들을 쇠퇴하게 하는 다른 어떤 법도 보지 못한다.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 AN 1.299

예상 학습 시간 약 50분. 본문 여덟 절, 이해도 점검 다섯 문제, 용어 카드 서른 장.

견해란 무엇인가

‘견해’로 옮긴 diṭṭhi는 ‘보다’라는 동사(dassati, 어근 dis)에서 나온 말로, 본래 ‘봄’, ‘보는 방식’을 뜻한다. 같은 풍경도 어떤 안경을 끼고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듯, 견해는 세상을 비추어 보는 렌즈와 같다.

경전에서 이 말은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쓰인다. 하나는 ‘바른 견해’(sammādiṭṭhi), ‘그릇된 견해’(micchādiṭṭhi)처럼 수식어를 붙여 쓰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수식어 없이 그냥 ‘견해’라고 쓰는 경우다. 뒤의 경우 이 말은 거의 언제나 그릇된 견해를 가리킨다. 경전을 읽다가 “견해를 버린다”, “견해에 묶인다”는 표현을 만나면 그것이 그릇된 견해를 말하는 것임을 기억해 두자.

수식어가 붙은 견해

바른 견해(sammādiṭṭhi): 팔정도의 첫 요소, 사성제를 아는 것.

그릇된 견해(micchādiṭṭhi): 있는 그대로가 아닌 방식으로 보는 것.

수식어 없는 ‘견해’

거의 언제나 그릇된 견해를 가리킨다.

예: “견해의 밀림”, “견해에 대한 취착”

아비담마에서 diṭṭhi는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해로운 마음부수의 하나이며, 『청정도론』 제14장은 그 특징을 ‘지혜롭지 못한 확신’(ayoniso abhinivesa), 그 역할을 ‘잘못 붙잡음’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뜻의 견해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굳게 붙드는 것이다. ‘내일 비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은 견해가 아니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니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확신은 견해다.

견해는 행위를 낳는다

붓다가 견해를 이렇게 중시한 까닭은 견해가 행위를 낳기 때문이다. 「하나의 모음」(AN 1.312)에서 붓다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그 견해에 따라 짓는 몸과 말과 마음의 업, 의도, 소망, 바람, 형성은 모두 원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로 이끈다고 설한다.

님 나무의 씨앗

쓴 님 나무의 씨앗을 심으면 그 땅의 흙과 물에서 빨아들인 양분이 모두 쓴맛으로 바뀐다.

그릇된 견해 → 모든 행위가 원하지 않는 결과로
사탕수수의 씨앗

사탕수수 씨앗을 심으면 같은 흙과 물에서 빨아들인 양분이 모두 단맛으로 바뀐다.

바른 견해 → 모든 행위가 원하는 결과로

같은 땅, 같은 물이라도 어떤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열매의 맛이 달라진다. 견해는 그 씨앗과 같다. 그릇된 견해를 품은 사람은 선해 보이는 일을 해도 그 바탕의 견해 때문에 결과가 비틀리고, 바른 견해를 품은 사람의 행위는 그 바탕에서 단맛을 끌어낸다. 그래서 붓다는 같은 모음에서, 그릇된 견해만큼 비난받을 만한 다른 어떤 법도 보지 못하며 “그릇된 견해가 허물 가운데 으뜸”(micchādiṭṭhiparamāni vajjāni, AN 1.310)이라고까지 말한다. 주석서는 이 말이 특히 제5절에서 볼 ‘결정된 그릇된 견해’를 두고 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두 가지 바른 견해

「위대한 마흔 가지 경」(MN 117)에서 붓다는 바른 견해에 두 가지가 있다고 설한다.

Sammādiṭṭhimpahaṃ, bhikkhave, dvāyaṃ vadāmi – atthi, bhikkhave, sammādiṭṭhi sāsavā puññabhāgiyā upadhivepakkā; atthi, bhikkhave, 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 maggaṅgā.

비구들이여, 나는 바른 견해를 두 가지로 말한다. 비구들이여, 번뇌를 동반하고 공덕에 속하며 재생의 토대를 익게 하는 바른 견해가 있고, 비구들이여, 성스럽고 번뇌가 없으며 출세간이고 도의 요소인 바른 견해가 있다.

「위대한 마흔 가지 경」, MN 117

세간적 바른 견해업의 주인됨에 관한 바른 견해kammassakatā sammādiṭṭhi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고, 이 생 너머에 다른 생이 있으며, 그것을 직접 안 이들이 있다는 세계관.

  • 번뇌를 동반함 (sāsavā)
  • 공덕에 속함 (puññabhāgiyā)
  • 재생의 토대를 익게 함 (upadhivepakkā)
→ 좋은 곳에 태어나는 공덕. 그러나 그 자체로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출세간적 바른 견해사성제를 꿰뚫어 보는 지혜lokuttarā sammādiṭṭhi

성스러운 도를 닦는 이의 마음에 있는 지혜, 지혜의 기능, 지혜의 힘, 법을 조사하는 깨달음의 요소.

  • 성스러움 (ariyā)
  • 번뇌가 없음 (anāsavā)
  • 도의 요소 (maggaṅgā)
→ 괴로움을 끝낸다. 그 첫 완성이 흐름에 든 이의 도다.

세간적 바른 견해의 열 가지 항목

첫째는 세간적 바른 견해다. 붓다는 그 내용을 열 가지 항목으로 설한다. 보시는 있고, 헌공은 있고, 제사는 있으며, 선하고 악한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고, 이 세상은 있고, 저세상은 있으며, 어머니는 있고, 아버지는 있고, 화생하는 중생은 있으며, 이 세상과 저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는 바르게 도를 닦는 사문과 브라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있다”, “이 세상은 있다” 같은 항목은 처음 들으면 너무 당연해서 이상하게 들린다. 누가 어머니가 없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주석서에 따르면 이 말들은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에 관련된 행위에 과보가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아래의 각 항목을 눌러 주석서의 풀이를 펼쳐 보고, ‘그릇된 견해로 보기’를 눌러 그 반대를 읽어 보자.

그림 6-1세간적 바른 견해의 열 가지 항목

표 6-1세간적 바른 견해의 열 가지 항목과 그 반대 (MN 117)
세간적 바른 견해열 가지 그릇된 견해
보시는 있다보시는 없다
헌공은 있다헌공은 없다
제사는 있다제사는 없다
선하고 악한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다선하고 악한 업의 결실과 과보는 없다
이 세상은 있다이 세상은 없다
저세상은 있다저세상은 없다
어머니는 있다어머니는 없다
아버지는 있다아버지는 없다
화생하는 중생은 있다화생하는 중생은 없다
이 세상과 저세상을 스스로 알고 실현한 사문·브라만이 있다그런 사문·브라만은 없다

주석서에 따르면 ‘보시·헌공·제사가 있다’는 그 행위에 결실이 있다는 뜻이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는 부모에게 한 선행과 악행에 과보가 있다는 뜻이며, ‘화생하는 중생’이란 모태를 거치지 않고 태어나는 천신과 지옥 중생 등을 가리킨다.

이 열 가지는 이른바 ‘업의 주인됨에 관한 바른 견해’(kammassakatā sammādiṭṭhi)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고 이 생 너머에 다른 생이 있으며 그것을 직접 안 이들이 있다는 세계관이다. 이 견해를 가진 이는 선업을 짓고 악업을 삼가므로 좋은 곳에 태어나는 공덕을 얻지만, 이 견해 자체가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번뇌를 동반하고 재생의 토대를 익게 하는’ 견해라고 불린다.

출세간적 바른 견해

둘째는 출세간적 바른 견해다. 붓다는 이를 성스러운 도를 닦는 이의 마음에 있는 지혜, 지혜의 기능, 지혜의 힘, 법을 조사하는 깨달음의 요소라고 설한다. 「분석 경」(SN 45.8)이 바른 견해를 사성제에 대한 앎이라고 정의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바른 견해 경」(MN 9)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바른 견해를 여러 각도에서 설명한다.

  1. 해로운 것과 그 뿌리를 안다해로운 것과 그 뿌리인 탐욕·성냄·어리석음, 유익한 것과 그 뿌리인 그 반대를 안다.
  2. 네 겹으로 안다음식, 괴로움, 열두 고리 하나하나, 번뇌를 각각 그 일어남과 소멸과 소멸로 이끄는 길과 함께 안다.
  3. 지금 여기서 괴로움을 끝낸다탐욕과 적의의 잠재성향을 버리고 ‘나는 있다’는 견해와 자만의 잠재성향을 뿌리 뽑아,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킨다.

출세간적 바른 견해는 이렇게 사성제를 직접 꿰뚫어 보는 지혜이며, 그 첫 번째 완성이 마지막 편에서 볼 흐름에 든 이의 도다.

지금 세울 수 있는 견해

두 가지 바른 견해의 구별은 입문자에게 중요한 지침을 준다. 사성제를 꿰뚫어 보는 출세간의 지혜는 오랜 수행 끝에 얻어지지만, 업과 그 과보를 인정하고 이 생 너머를 인정하는 세간적 바른 견해는 지금 곧 세울 수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주석서는 세간적 바른 견해가 출세간적 바른 견해의 토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업의 과보를 믿지 않는 이는 계를 지킬 까닭이 없고, 계 없이는 삼매가, 삼매 없이는 지혜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올릴 수 없듯이.

상견과 단견

그릇된 견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붓다는 그 모두를 두 뿌리로 정리했다. 넷째 편과 다섯째 편에서 거듭 만난 상견(常見, sassatadiṭṭhi)과 단견(斷見, ucchedadiṭṭhi)이다. 「깟짜나곳따 경」에서 ‘모든 것은 있다’와 ‘모든 것은 없다’로, 「나체 수행자 깟사빠 경」에서 ‘괴로움은 스스로 지은 것’과 ‘남이 지은 것’으로 나타난 두 극단이 그것이다.

표 6-2상견과 단견
상견 sassatadiṭṭhi단견 ucchedadiṭṭhi
요지영원한 자아나 세계가 있다.자아가 있기는 하지만 죽음과 함께 끊어져 없어진다.
구체적 모습죽은 뒤에도 소멸하지 않는 영혼이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옮겨 간다. 이 세계나 그 근원이 영원하다.사람은 물질 요소의 결합일 뿐이며,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붓다 당시의 예브라만교의 아트만 사상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주장
오늘날의 예‘윤회를 믿는 것’이라고 할 때 흔히 상상되는, 영혼이 옮겨 다닌다는 생각유물론적 세계관
짝을 이루는 갈애존재에 대한 갈애 (bhavataṇhā)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 (vibhavataṇhā)
공통 전제‘나’라는 실체가 있다. 그것이 영원히 이어지느냐, 끊어지느냐를 다툴 뿐이다.

상견은 영원한 자아나 세계가 있다는 견해다. 죽은 뒤에도 소멸하지 않고 지속하는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이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옮겨 간다는 견해, 또는 이 세계나 그 근원이 영원하다는 견해가 모두 여기에 든다. 붓다 당시 브라만교의 아트만 사상이 대표적이며, 오늘날 ‘윤회를 믿는 것’이라고 말할 때 흔히 상상되는 것도 이 견해에 가깝다. 다섯째 편에서 보았듯 붓다가 가르친 윤회는 영혼이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상견과 다르다.

단견은 자아가 있기는 하지만 죽음과 함께 끊어져 없어진다는 견해다. 오늘날의 유물론과 비슷하며, 붓다 당시에도 아지따 께사깜발리 같은 사상가가 이를 주장했다. 단견은 언뜻 상견보다 소박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붓다는 이것을 상견과 마찬가지로 그릇된 견해로 보았다. 단견 역시 ‘끊어지는 무엇’, 곧 자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업과 그 과보를 부정하여 선행의 근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없어질 무엇을 세우지 않음

이 두 견해가 모든 그릇된 견해의 뿌리라는 것은 「범망경」(DN 1)의 구조에서 분명히 드러나며, 이는 제6절에서 살펴본다. 여기서는 붓다가 두 견해를 함께 물리치는 방식만 다시 확인해 두자. 붓다는 ‘자아가 있느냐 없느냐’를 다투는 대신 ‘무엇이 있을 때 무엇이 있는가’를 물었다. 조건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는 영원한 것도 없고 끊어지는 것도 없다.

야마까의 견해 (SN 22.85)

야마까 비구는 “번뇌를 다한 비구는 죽으면 끊어져 없어진다”고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리뿟따 존자는 그에게 다섯 무더기가 영원한지 무상한지를 차례로 물은 뒤, 여래를 물질로 보는지, 물질 안에 있다고 보는지, 물질과 다른 곳에 있다고 보는지를 묻는다. 야마까는 모두 아니라고 답한다. 그러자 사리뿟따는 말한다. 지금 여기에서조차 여래를 다섯 무더기 안에서도 밖에서도 실재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없는데, 어떻게 죽은 뒤 그가 없어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끊어진다고 말하려면 먼저 끊어질 무엇이 있어야 한다.

없어질 무엇을 처음부터 세우지 않는 것, 그것이 두 극단을 함께 벗어나는 길이다. 영원한 것이 있다고 세우지 않으니 상견이 아니고, 끊어지는 것이 있다고 세우지 않으니 단견도 아니다. 다만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은 조건 따라 일어나고, 조건이 다하면 사라질 뿐이다.

스무 가지 유신견

상견과 단견이 자아에 대한 견해의 두 방향이라면,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은 그 자아를 다섯 무더기와 관련지어 세우는 구체적인 방식이다. 셋째 편에서 스무 가지 유신견을 표로 처음 만났는데, 이 편에서는 그것을 견해의 눈으로 다시 읽어 보자. ‘유신’으로 옮긴 sakkāya는 ‘존재하는 몸’, 곧 다섯 무더기를 가리킨다. 「짧은 문답 경」(MN 44)에서 담마딘나 비구니는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인 다섯 무더기를 유신이라고 하셨다”고 말한 뒤, 유신견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설명한다.

Idhāvuso visākha, assutavā puthujjano …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rūpaṃ, rūpasmiṃ vā attānaṃ. Vedanaṃ … saññaṃ … saṅkhāre … viññāṇaṃ attato samanupassati, viññāṇ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smiṃ vā attānaṃ.

위사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 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가 물질을 가진 것으로 여기거나,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느낌을 … 인식을 … 형성을 … 의식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가 의식을 가진 것으로 여기거나, 자아 안에 의식이 있다고 여기거나,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짧은 문답 경」, MN 44

다섯 무더기 각각에 네 가지 방식이 있으므로 모두 스무 가지가 된다. 셋째 편에서 본 네 가지 비유를 떠올리면서, 주석서가 이 네 방식을 상견과 단견에 어떻게 나누어 배당하는지 보자.

그림 6-2유신견의 네 방식과 두 극단

단견에 가까움물질을 자아로 여김

등불의 불꽃과 그 빛깔이 같은 것이라고 여기듯

물질과 자아가 같다면, 물질이 무너질 때 자아도 무너진다.
상견에 가까움자아가 물질을 가짐

나무가 그림자를 가지듯

물질이 무너져도 그것을 가졌던 자아는 남는다.
상견에 가까움자아 안에 물질

꽃 안에 향기가 있듯

물질이 무너져도 그것을 품은 자아는 남는다.
상견에 가까움물질 안에 자아

보석 상자 안에 보석이 있듯

상자가 부서져도 보석은 남는다.

주석서는 첫째 방식이 단견에 가깝고 나머지 셋은 상견에 가깝다고 풀이한다. 물질과 자아가 같다면 물질이 무너질 때 자아도 무너지지만, 자아가 물질을 가졌거나 물질과 다른 곳에 있다면 물질이 무너져도 자아는 남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무 가지 유신견은 앞 절의 두 뿌리와 다시 이어진다.

이 스무 가지는 사람들이 ‘나’를 세우는 방식을 남김없이 분류한 것이다. 몸이 곧 나라고 여기는 사람, 몸은 내가 가진 것이고 진짜 나는 마음이라고 여기는 사람, 나라는 것이 몸과 마음 어딘가에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모두 여기에 든다.

끊어진 견해, 남은 냄새

유신견은 성자가 되는 순간 끊어지는 첫 번째 족쇄다. 흐름에 든 이는 다섯 무더기 어디에서도 자아를 세우지 않으며, 그래서 그에게는 상견도 단견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유신견이 끊어졌다고 해서 ‘나’라는 느낌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갓 빤 옷의 냄새 (SN 22.89)

케마까 존자는 다섯 무더기 어디에서도 자아를 보지 않지만 아직 ‘나는 있다’는 자만(asmimāna)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는 이에게 맡기면, 그는 소금물이나 잿물이나 쇠똥으로 빨아 깨끗한 물에 헹군다. 옷은 깨끗해졌지만 아직 그 세제의 냄새가 남아 있다. 주인이 그 옷을 향 상자에 넣어 두면 그 냄새마저 사라진다.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가 다섯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거듭 관찰하면, 남아 있던 ‘나는 있다’는 자만과 욕망과 잠재성향마저 뿌리 뽑힌다.

그림 6-3‘나’에 대한 붙듦이 사라지는 두 단계

흐름에 든 이견해로서의 유신견이 끊어짐

“이 몸과 마음 어딘가에 자아가 있다”는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

아라한습성으로서의 ‘나는 있다’는 자만까지 사라짐

생각으로는 이미 놓았던 ‘나’라는 느낌의 냄새까지 남김없이 사라진다.

견해로서의 유신견은 흐름에 든 이가 끊지만, 습성으로 남은 ‘나는 있다’는 자만은 아라한이 되어야 완전히 사라진다. 아는 것과 완전히 바뀌는 것 사이에는 이렇게 거리가 있으며, 그 거리를 걷는 것이 수행이다.

결정된 그릇된 견해

그릇된 견해 가운데 특히 무거운 것으로 세 가지가 꼽힌다. 「사문과경」(DN 2)에서 아자따삿뚜 왕이 붓다 당시의 여섯 사상가(육사외도)에게 출가의 결실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이 답한 내용이 그 전형이다. 주석서는 이 셋을 ‘결정된 그릇된 견해’(niyata micchādiṭṭhi)라 부르며, 이 견해를 굳게 붙든 이는 다음 생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는 것과 도를 이루는 것이 모두 막히기에 그 과보가 오무간업보다도 무겁다고 설명한다.

표 6-3세 가지 결정된 그릇된 견해 (「사문과경」, DN 2)
견해대표 사상가내용
허무론
natthikavāda
아지따 께사깜발리보시·제사·업의 과보·저세상·부모·화생 중생·바르게 도를 닦은 사문은 없다. 사람은 네 요소로 이루어졌을 뿐이며 어리석은 자든 지혜로운 자든 죽으면 끊어져 없어진다.
무작용론
akiriyavāda
뿌라나 깟사빠스스로 행하든 남을 시켜 행하든, 죽이고 훔치고 거짓말하더라도 악을 짓는 것이 아니며, 보시하고 계를 지켜도 공덕을 짓는 것이 아니다. 행위에는 도덕적 성질이 없다.
무인론
ahetukavāda
막칼리 고살라중생이 오염되거나 청정해지는 데는 원인도 조건도 없다. 모든 것은 운명과 우연과 본성으로 정해져 있으며, 실타래가 풀리듯 정해진 기간을 지나면 저절로 괴로움이 끝난다.

아지따의 주장을 「사문과경」은 이렇게 전한다.

Natthi, mahārāja, dinnaṃ, natthi yiṭṭhaṃ, natthi hutaṃ,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natthi ayaṃ loko, natthi paro loko … Bālo ca paṇḍito ca kāyassa bhedā ucchijjanti vinassanti, na honti paraṃ maraṇā.

대왕이시여, 보시도 없고, 헌공도 없고, 제사도 없고, 선하고 악한 업의 결실과 과보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세상도 없습니다. … 어리석은 자든 지혜로운 자든 몸이 무너지면 끊어지고 사라지며,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문과경」, DN 2

제2절에서 본 열 가지 그릇된 견해가 바로 이 허무론이다. 세 견해는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듯하지만 결론은 같다. 어떤 것을 하든 하지 않든 결과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세 견해를 하나씩 눌러, 각 견해가 행위와 결과를 잇는 사슬의 어느 고리를 끊는지 보자.

그림 6-4세 견해가 끊는 고리

원인과 조건무언가가 일어나는 데는 원인이 있다
행위의 도덕적 성질행위에는 선과 악이 있다
과보와 저세상선악의 행위에는 그에 맞는 과보가 따른다
견해를 하나 골라 보자. 어느 고리를 끊든 사슬은 끊어지고, 결론은 같아진다.

허무론은 과보를 받을 저세상을 부정하고, 무작용론은 과보를 낳을 행위의 도덕적 성질을 부정하며, 무인론은 결과를 낳는 원인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 이 세 견해가 왜 그토록 무거운지는 분명하다. 이 견해를 받아들인 이에게는 악을 삼가고 선을 행할 까닭이 없어지고, 나아가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닦을 까닭도 없어진다.

첫째 편에서 본 「깔라마 경」의 끝에서 붓다가 설한 네 가지 안식이 이 견해들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저세상과 업의 과보가 있든 없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린 이는 이롭지만, 이 견해들을 받아들여 악을 짓는 이는 저세상이 있다면 나쁜 곳에 떨어지고 없더라도 지혜로운 이들의 비난을 받는다. 어느 쪽에 걸든 바른 견해 쪽이 손해 보지 않는 내기다.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다

붓다는 「사문과경」에서 이 여섯 사상가의 답을 들려준 왕에게, 그들은 망고를 물었는데 빵나무 열매를 답하는 것처럼 출가의 결실을 묻는 물음에 엉뚱한 답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이 삶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출가의 결실을 계·삼매·지혜의 순서로 자세히 설한다.

그릇된 견해에 대한 붓다의 대답은 언제나 반대 이론이 아니라 실천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이었다. ‘행위에 결과가 있다’는 것을 논증으로 증명하는 대신, 계를 지키는 이가 지금 여기서 얻는 두려움 없음과 삼매의 행복과 지혜의 밝음을 보여 준 것이다.

「범망경」의 예순두 가지 견해

『디가 니까야』의 첫 경인 「범망경」(Brahmajāla Sutta, DN 1)은 붓다 당시 사문과 브라만들이 자아와 세계에 대해 세운 견해를 예순두 가지로 분류하고 그 근거와 한계를 밝힌 경이다. 그 분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6-4「범망경」의 예순두 가지 견해
구분견해수요지
과거에 관한
열여덟 가지
영원론4자아와 세계는 영원하다. 전생을 기억하는 삼매 체험이나 추론에 근거한다.
일부 영원론4자아와 세계의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다. 범천은 영원하고 나머지는 아니라는 견해 등이다.
유한·무한론4세계는 유한하다, 무한하다, 유한하면서 무한하다, 유한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얼버무림4무엇을 물어도 ‘그렇지도 않고 그렇지 않지도 않다’며 뱀장어처럼 빠져나가는 회의론이다.
우연 발생론2자아와 세계는 원인 없이 우연히 생겨났다.
미래에 관한
마흔네 가지
사후 인식 있음16죽은 뒤 자아는 인식을 지니고 존재한다. 물질적이다, 비물질적이다 등의 방식으로 열여섯 가지.
사후 인식 없음8죽은 뒤 자아는 인식 없이 존재한다.
인식이 있지도 없지도 않음8죽은 뒤 자아는 인식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채 존재한다.
단멸론7자아는 죽음과 함께 끊어진다. 육체적 자아에서 비상비비상처의 자아까지 일곱 층위.
지금 여기서의 열반론5감각적 쾌락의 향유, 또는 네 가지 선정의 경지가 곧 지금 여기서의 최고의 열반이다.

표의 예순두 가지를 한 줄의 띠로 늘어놓아 보자. 띠의 각 칸을 누르면 그 견해의 요지가 나타난다. 색은 그 견해가 어느 뿌리에 속하는지를 나타낸다.

그림 6-5예순두 가지 견해의 띠

과거에 관한 18미래에 관한 44

상견 계열 50 단견 7 조건 지어진 경지를 열반으로 오인 5

띠의 칸을 하나 눌러 보자.

표에서 읽어 낼 세 가지

이 표에서 몇 가지를 읽어 낼 수 있다. 첫째, 예순두 가지 견해는 결국 상견과 단견의 변주다. 과거에 관한 견해들과 사후에 자아가 존재한다는 서른두 가지 견해는 상견 계열이고, 단멸론은 단견이며, 지금 여기서의 열반론은 조건 지어진 경지를 열반으로 오인한 것이다. 띠의 대부분이 상견의 색으로 칠해진 것이 눈에 띈다.

둘째, 이 견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명상 체험에 근거한다. 전생을 기억하고 범천을 보고 깊은 선정에 드는 체험이 그 자체로는 진실이지만, 그 체험을 자아와 세계에 대한 결론으로 확장할 때 그릇된 견해가 된다. 둘째 편에서 붓다가 두 스승 아래서 이른 깊은 선정조차 열반이 아니었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자. 「범망경」은 깊은 명상 체험이 곧 바른 견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셋째, 단멸론의 일곱 층위는 죽으면 끝난다는 견해가 단순한 유물론만이 아니라, 무색계의 미묘한 자아가 끊어진다는 매우 정교한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단견이라고 해서 언제나 거칠고 소박한 것은 아니다.

논박 대신 뿌리를 보다

붓다는 이 견해들을 하나하나 논박하지 않는다. 대신 이 모든 견해가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느낌에 대한 갈애와 취착에서 생겨난 것이며, 그 견해를 세운 이들은 “접촉 없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밝힌다. 다섯째 편의 열두 고리로 말하면, 견해는 접촉 → 느낌 → 갈애 → 취착의 사슬 위에서 자라난 열매다. 여래는 이 견해들의 일어남과 소멸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기에 그것들에 붙들리지 않는다. 경은 마지막에 그물의 비유를 든다.

Seyyathāpi, bhikkhave, dakkho kevaṭṭo vā kevaṭṭantevāsī vā sukhumacchikena jālena parittaṃ udakarahadaṃ otthareyya. Tassa evamassa – ‘ye kho keci imasmiṃ udakarahade oḷārikā pāṇā, sabbe te antojālīkatā …’ Evameva kho, bhikkhave,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pubbantakappikā vā aparantakappikā vā … dvāsaṭṭhiyā vatthūhi … sabbe te imeheva dvāsaṭṭhiyā vatthūhi antojālīkatā.

비구들이여, 마치 능숙한 어부나 어부의 제자가 촘촘한 그물로 작은 연못을 덮으면, 그에게 ‘이 연못에 있는 큰 생명들은 모두 이 그물 안에 갇혔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비구들이여, 과거를 헤아리고 미래를 헤아리는 어떤 사문이나 브라만들이든 … 그들은 모두 이 예순두 가지 근거 안에서 그물에 갇힌 것이다.

「범망경」, DN 1

‘범망’, 곧 ‘범천의 그물’이라는 경의 이름은 여기서 왔다. 표지의 무늬가 바로 이 그물이다. 자아와 세계에 대해 세울 수 있는 견해는 예순두 가지 그물코 안에 모두 갇히며, 붓다는 그 그물 밖에 서서 견해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디로 이끄는지를 본다.

예순두 가지의 세부를 외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온갖 이론이 결국 느낌에 대한 갈애에서 생겨난다는 통찰, 그리고 붓다의 길은 그 이론들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뿌리를 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물코를 하나하나 끊으며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물이 무엇으로 짜였는지를 아는 것이다.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

유신견, 의심과 함께 흐름에 든 이가 끊는 세 가지 족쇄 가운데 하나가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sīlabbataparāmāsa)이다. 이 말은 붓다가 계를 가볍게 여겼다는 뜻이 아니다. 계는 붓다 가르침의 토대이며 이 강좌의 열째 편 전체가 계에 바쳐진다. 붓다가 경계한 것은 계율이나 의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청정해진다는 그릇된 믿음이다.

그림 6-6흐름에 든 이가 끊는 세 가지 족쇄

유신견sakkāyadiṭṭhi다섯 무더기에 자아가 있다는 견해 (제4절)
의심vicikicchā붓다·담마·상가와 길에 대한 의심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sīlabbataparāmāsa계율이나 의례로써 청정해진다는 믿음 (이 절)

아비담마의 『담마상가니』는 이를 “계로써 청정해진다, 의례로써 청정해진다, 계와 의례로써 청정해진다”고 여기는 견해라고 정의한다. 곧 특정한 의례를 행하거나 특정한 규율을 지키는 것만으로 번뇌가 씻기고 해탈에 이른다고 믿는 것이다. 원어의 parāmāsa는 ‘잘못 만짐’, ‘거꾸로 붙듦’이라는 뜻이다. 계와 의례를 붙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엉뚱한 쪽에서 거꾸로 붙드는 것이 문제다.

개의 행실을 하는 자

「개의 행실을 하는 자 경」(MN 57)은 이 집착의 극단적인 예를 보여 준다. 개처럼 행동하는 서원을 지키는 세니야와 소처럼 행동하는 서원을 지키는 뿐나가 붓다를 찾아와 자신들의 수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고 묻는다. 붓다는 거듭 답하기를 꺼리다가, 세 번째 물음에 이르러서야 답한다. 개의 행실을 완전하게 닦은 이는 죽어서 개들 가운데 태어나고, 만일 ‘이 계와 서원과 고행과 청정한 삶으로 신이나 천신이 되리라’는 견해를 가졌다면 그것은 그릇된 견해이므로 지옥이나 축생에 떨어진다고.

그 뒤 붓다는 검은 업과 흰 업의 가르침을 설하여,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의례가 아니라 의도의 성질임을 밝힌다. 이 가르침은 다음 편의 업에 대한 이야기로 곧장 이어진다.

오늘의 모습

이 족쇄는 오늘날에도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같은 행위라도 그것을 어떻게 붙드느냐에 따라 길이 되기도 하고 족쇄가 되기도 한다.

족쇄가 된 계와 의례

특정한 방식으로 절하고 특정한 경을 외고 특정한 의식을 치르면 그것으로 업이 소멸하고 복이 온다고 믿는다.

계를 지키는 일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그 정신을 잊는다.

남들이 계를 어떻게 지키는지를 재는 데 몰두한다.

길이 된 계와 의례

절과 독송과 의식을 마음을 가다듬고 공경과 신심을 일으키는 계기로 삼는다.

계를 지키는 까닭, 곧 남을 해치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하려는 뜻을 늘 새긴다.

계의 거울을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비춘다.

붓다는 「보시 분석 경」(MN 142)을 비롯한 여러 경에서 의례와 계에 큰 결실이 있다고 설했지만, 그 결실은 언제나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이었지 의례의 형식 자체에 있지 않았다. 흐름에 든 이는 계를 더 잘 지키지만, 계로써 청정해진다는 견해는 버린다. 그에게 계는 목적이 아니라 삼매와 지혜로 가는 길이다.

견해에 대한 집착

이 편의 마지막에서 짚어야 할 것은 견해에 대한 집착 자체의 문제다. 「짧은 문답 경」이 열거한 네 가지 취착 가운데 둘째가 견해에 대한 취착(diṭṭhupādāna)이었다. 다섯째 편의 표 5-1에서도 취착의 네 가지 가운데 하나로 이것을 보았다. 붓다는 그릇된 견해를 경계했을 뿐 아니라, 견해를 붙들고 다투는 태도 자체를 경계했다. 『숫따니빠따』의 「여덟 게송 품」은 이 주제를 거듭 노래한다.

Paramanti diṭṭhīsu paribbasāno, yaduttari kurute jantu loke;
hīnāti aññe tato sabbamāha, tasmā vivādāni avītivatto.

견해들 가운데 ‘이것이 으뜸’이라며 머무는 사람은 세상에서 그것을 최상으로 삼고,
다른 것은 모두 그보다 못하다고 말하니, 그래서 그는 논쟁을 벗어나지 못한다.

「으뜸 경」, Sn 4.5

코끼리를 만진 사람들

『우다나』(Ud 6.4)는 이 태도를 유명한 비유로 그린다. 한 왕이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들을 모아 코끼리를 만지게 했다. 그리고 저마다에게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었다. 아래 그림에서 코끼리의 부분을 하나씩 눌러, 그 부분을 만진 이가 무엇이라 답했는지 보자.

그림 6-7눈먼 이들과 코끼리 (Ud 6.4)

코끼리의 부분을 눌러 보자.

그들은 저마다 “코끼리는 이런 것이지 저런 것이 아니다”라며 다투다가 끝내 주먹다짐을 벌였다. 붓다는 자아와 세계에 대해 다투는 사문과 브라만들이 이와 같다고 말한다. 각자 만진 부분은 실제로 있으나 그것을 전체로 여겨 붙들 때 다툼이 생긴다. 이 비유의 핵심은 그들이 틀린 것을 만졌다는 데 있지 않다. 머리는 정말 물항아리처럼 둥글고, 다리는 정말 기둥처럼 굵다. 문제는 자기가 만진 부분을 코끼리 전체라고 확신하고, 그 확신을 지키려고 다투는 데 있다.

바른 견해는 붙들어도 되는가

그렇다면 바른 견해는 붙들어도 되는가? 붓다는 여기서도 신중했다. 「악기왓차곳따 경」(MN 72)에서 왓차곳따가 붓다는 어떤 견해를 가졌느냐고 묻자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Diṭṭhigatanti kho, vaccha, apanītametaṃ tathāgatassa. Diṭṭhañhetaṃ, vaccha, tathāgatena – iti rūpaṃ,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

왓차여, 견해라는 것은 여래가 버린 것이다. 왓차여, 여래는 이것을 보았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

「악기왓차곳따 경」, MN 72

여래가 지닌 것은 견해가 아니라 다섯 무더기와 그 일어남과 사라짐을 ‘본 것’이다. 그리고 붓다는 견해에 붙드는 것을 “견해의 밀림, 견해의 광야, 견해의 뒤틀림, 견해의 요동, 견해의 족쇄”라 부르며, 그것은 괴로움을 동반하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설한다.

「아나타삔디까 경」(AN 10.93)에서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여러 유행자들이 저마다 세계는 영원하다느니 아니라느니 하는 견해를 내세우자 그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그 견해들은 모두 “생겨나고 형성되고 의도되고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이며, 그러한 것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고. 그리고 자신의 견해는 “생겨나고 형성되고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은 무엇이든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며, 괴로움인 것은 내가 아니고 나의 것이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이라고. 붓다는 이 답을 듣고 장자를 칭찬했다.

다른 견해들

자아와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단정한다.

그 단정을 ‘으뜸’이라며 붙든다.

→ 논쟁을 벗어나지 못한다.

바른 견해

조건 따라 일어난 모든 것이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임을 본다.

견해 자체도 조건 따라 일어난 것임을 알기에 그것마저 붙들지 않는다.

→ 다툴 것이 없다.

여기에 바른 견해가 다른 견해들과 다른 점이 있다. 다른 견해들은 자아와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단정하고 그 단정을 붙든다. 바른 견해는 조건 따라 일어난 모든 것이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임을 보며, 그렇게 보는 이는 견해 자체도 조건 따라 일어난 것임을 알기에 그것마저 붙들지 않는다.

뗏목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

첫째 편에서 본 뗏목의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바른 견해는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이며, 강을 건넌 뒤에도 뗏목이 고맙다며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은 바른 견해를 잘못 붙드는 것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기 전에 뗏목을 버려서도 안 된다. 그것은 붙들지 말라는 가르침을 핑계로 아직 건너지도 않은 강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다음 두 편에서 다룰 업과 윤회의 가르침은 바로 제2절에서 본 세간적 바른 견해의 내용이며, 이 뗏목 없이는 강을 건널 수 없다.

용어 정리

이 편에서 새로 만난 빠알리 용어들이다. 읽기는 이 강좌의 한글 표기 원칙을 따랐고, 용례는 이 편에 실린 원문에서 골랐다. 세 가지 족쇄와 세 가지 결정된 그릇된 견해처럼 셋씩 묶이는 용어는 묶음째로 외워 두면 좋다.

표 6-5여섯째 편의 용어 서른 개
번호원어읽기분류뜻용례
1diṭṭhi딧티견해견해, 봄. 수식어 없이 쓰이면 대개 그릇된 견해Diṭṭhigatanti kho, vaccha, apanītametaṃ tathāgatassa.왓차여, 견해라는 것은 여래가 버린 것이다.
2sammādiṭṭhi삼마딧티견해바른 견해yathayidaṃ, bhikkhave, sammādiṭṭhi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만큼
3micchādiṭṭhi밋차딧티견해그릇된 견해, 사견(邪見)micchādiṭṭhiparamāni vajjāni그릇된 견해가 허물 가운데 으뜸이다
4abhinivesa아비니웨사견해확신, 고집하여 붙듦ayoniso abhinivesa지혜롭지 못한 확신
5vajja왓자견해허물, 비난받을 만한 것micchādiṭṭhiparamāni vajjāni그릇된 견해가 허물 가운데 으뜸이다
6kammassakatā깜맛사까따바른 견해업의 주인됨. 자기 업이 자기 것이라는 바른 견해kammassakatā sammādiṭṭhi업의 주인됨에 관한 바른 견해
7puññabhāgiya뿐냐바기야바른 견해공덕에 속하는sammādiṭṭhi sāsavā puññabhāgiyā번뇌를 동반하고 공덕에 속하는 바른 견해
8lokuttara로꿋따라바른 견해출세간(出世間)의sammādiṭṭhi ariyā anāsavā lokuttarā성스럽고 번뇌 없는 출세간의 바른 견해
9maggaṅga막강가바른 견해도의 요소lokuttarā maggaṅgā출세간이고 도의 요소인
10opapātika오빠빠띠까바른 견해화생(化生)하는 중생. 모태 없이 태어나는 천신·지옥 중생 등atthi sattā opapātikā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11sassatadiṭṭhi삿사따딧티두 극단상견(常見). 영원한 자아나 세계가 있다는 견해sassatavādā상견을 주장하는 이들
12ucchedadiṭṭhi웃체다딧티두 극단단견(斷見). 자아가 죽음과 함께 끊어진다는 견해ucchijjanti vinassanti, na honti paraṃ maraṇā끊어지고 사라지며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13sakkāyadiṭṭhi삭까야딧티유신견유신견(有身見). 다섯 무더기에 자아가 있다는 견해rūpaṃ attato samanupassati물질을 자아로 여긴다
14asmimāna아스미마나유신견‘나는 있다’는 자만. 아라한이 되어야 완전히 사라짐asmimāna‘나는 있다’는 자만
15saṃyojana상요자나족쇄족쇄. 중생을 윤회에 묶는 번뇌tīṇi saṃyojanāni세 가지 족쇄
16vicikicchā위찌낏차족쇄의심. 흐름에 든 이가 끊는 족쇄의 하나vicikicchā의심
17sīlabbataparāmāsa실랍바따빠라마사족쇄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 계금취(戒禁取)sīlabbataparāmāsa계율과 의례를 거꾸로 붙듦
18niyata micchādiṭṭhi니야따 밋차딧티결정된 견해결정된 그릇된 견해. 허무론·무작용론·무인론niyata micchādiṭṭhi결정된 그릇된 견해
19natthikavāda낫티까와다결정된 견해허무론. 보시·과보·저세상 등이 없다는 주장Natthi, mahārāja, dinnaṃ대왕이시여, 보시도 없습니다
20akiriyavāda아끼리야와다결정된 견해무작용론. 행위에 도덕적 성질이 없다는 주장akiriyavāda무작용론
21ahetukavāda아헤뚜까와다결정된 견해무인론. 오염과 청정에 원인이 없다는 주장ahetukavāda무인론
22sāmaññaphala사만냐팔라결정된 견해출가의 결실, 사문의 과보Sāmaññaphala Sutta「사문과경」
23brahmajāla브라흐마잘라범망경범천의 그물Brahmajāla Sutta「범망경」
24pubbantakappika뿝반따깝삐까범망경과거를 헤아리는 이pubbantakappikā vā aparantakappikā vā과거를 헤아리는 이든 미래를 헤아리는 이든
25amarāvikkhepa아마라윅케빠범망경얼버무림. 뱀장어처럼 빠져나가는 회의론amarāvikkhepikā얼버무리는 이들
26antojālīkata안또잘리까따범망경그물 안에 갇힌sabbe te antojālīkatā그들은 모두 그물 안에 갇혔다
27diṭṭhupādāna딧투빠다나집착견해에 대한 취착diṭṭhupādāna견해에 대한 취착
28diṭṭhigahana딧티가하나집착견해의 밀림diṭṭhigahanaṃ diṭṭhikantāraṃ견해의 밀림, 견해의 광야
29vivāda위와다집착논쟁, 다툼tasmā vivādāni avītivatto그래서 그는 논쟁을 벗어나지 못한다
30kulla꿀라집착뗏목kullūpamo dhammo뗏목과 같은 법

이 편의 전거 약어

이 편에서 인용한 경전과 논서의 약어다. ‘AN 1.299’는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의 299번째 경을, ‘Sn 4.5’는 『숫따니빠따』 제4품의 다섯 번째 경을 가리킨다.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의 경 번호는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표 6-6전거 약어
약어원서명우리말 이름
DNDīghanikāya디가 니까야 (길게 설하신 경 모음)
MNMajjhimanikāya맛지마 니까야 (중간 길이로 설하신 경 모음)
SNSaṃyuttanikāya상윳따 니까야 (주제별로 묶은 경 모음)
ANAṅguttaranikāya앙굿따라 니까야 (숫자별로 묶은 경 모음)
SnSuttanipāta숫따니빠따 (경집)
UdUdāna우다나 (감흥어)
DhsDhammasaṅgaṇī담마상가니 (법집론)
VismVisuddhimagga청정도론

이해도 점검

이 편의 핵심을 다섯 문제로 확인해 보자. 보기를 누르면 곧바로 채점되고, 그 아래의 해설을 펼쳐 볼 수 있다. 마지막 문제는 여러 절의 내용을 함께 엮어야 풀 수 있는 심화 문제다. 푼 기록은 이 기기에 남으므로 나중에 돌아와도 이어서 볼 수 있다.

0 / 5 정답
아직 푼 문제가 없다
첫째 문제

「위대한 마흔 가지 경」(MN 117)의 두 가지 바른 견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해설 펼치기

세간적 바른 견해는 ‘번뇌를 동반하고 공덕에 속하며 재생의 토대를 익게 하는’ 견해로, 좋은 곳에 태어나는 공덕을 주지만 그 자체로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가). 열 가지 항목은 세간적 바른 견해의 내용이고, 출세간적 바른 견해는 사성제를 꿰뚫어 보는 지혜다(다). 주석서는 세간적 바른 견해가 출세간적 바른 견해의 토대라고 설명한다. 업의 과보를 믿지 않는 이는 계를 지킬 까닭이 없고, 계 없이는 삼매가, 삼매 없이는 지혜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라).

둘째 문제

세 가지 결정된 그릇된 견해와 그 대표 사상가, 그리고 그 견해가 부정하는 것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해설 펼치기

무작용론은 뿌라나 깟사빠의 주장으로, 죽이고 훔쳐도 악이 아니고 보시해도 공덕이 아니라며 행위의 도덕적 성질을 부정한다. 허무론은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주장으로 보시·과보·저세상 등을 부정하고, 무인론은 막칼리 고살라의 주장으로 오염과 청정에 원인도 조건도 없다며 원인 자체를 부정한다. 세 견해는 사슬의 다른 고리를 끊지만, 무엇을 하든 결과에 차이가 없다는 같은 결론에 이른다.

셋째 문제

「케마까 경」(SN 22.89)의 ‘갓 빤 옷의 냄새’ 비유가 말하는 것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해설 펼치기

케마까 존자는 다섯 무더기 어디에서도 자아를 보지 않지만 아직 ‘나는 있다’는 자만이 남아 있다고 말하며, 이를 세제 냄새가 남은 빨래에 비유한다. 견해로서의 유신견은 흐름에 든 이가 끊는 첫 번째 족쇄이고(나), 그에게는 상견도 단견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다). 남은 냄새는 다섯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거듭 관찰할 때 사라지는 것이지, 의례로 씻기는 것이 아니다(라).

넷째 문제

「범망경」(DN 1)에서 붓다가 예순두 가지 견해를 다루는 방식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해설 펼치기

붓다는 견해들을 하나하나 논박하지 않는다(가). 대신 그 모든 견해가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느낌에 대한 갈애와 취착에서 생겨났으며, 견해를 세운 이들은 “접촉 없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지 못한다고 밝힌다. 전생 기억이나 깊은 선정 같은 체험은 그 자체로는 진실이지만, 그것을 자아와 세계에 대한 결론으로 확장할 때 그릇된 견해가 된다(나). 붓다는 견해의 뿌리를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라도 틀렸다.

다섯째 문제 (심화)

이 편의 내용에 비추어 다음 진술 가운데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른 것은?

  1. ㄱ. 유신견의 네 방식 가운데 ‘자아가 물질을 가짐’, ‘자아 안에 물질’, ‘물질 안에 자아’는 주석서에서 단견에 가깝다고 풀이된다.
  2. ㄴ. 계율과 의례에 대한 집착을 끊은 흐름에 든 이는 계를 덜 중시하게 된다.
  3. ㄷ. 「악기왓차곳따 경」에서 붓다는 견해라는 것은 여래가 버린 것이며, 여래가 본 것은 다섯 무더기와 그 일어남과 사라짐이라고 답한다.
  4. ㄹ.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다른 이들의 견해가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이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라고 지적했으며, 바른 견해를 지닌 이는 견해 자체도 조건 따라 일어난 것임을 알기에 그것마저 붙들지 않는다.

해설 펼치기

ㄷ은 옳다. 붓다는 “왓차여, 견해라는 것은 여래가 버린 것이다”라고 답하고, 여래가 본 것은 물질과 그 일어남과 사라짐 등이라고 말한다(MN 72). ㄹ도 옳다. 장자는 유행자들의 견해가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이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라고 지적했고(AN 10.93), 바른 견해는 견해마저 붙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견해들과 다르다.

ㄱ은 틀렸다. 주석서는 첫째 방식, 곧 물질을 자아로 여기는 것이 단견에 가깝고, 나머지 셋이 상견에 가깝다고 풀이한다. 물질이 무너져도 그것을 가졌거나 품은 자아는 남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ㄴ도 틀렸다. 흐름에 든 이는 계를 더 잘 지킨다. 그가 버리는 것은 계 자체가 아니라 계로써 청정해진다는 견해다. 따라서 정답은 ㄷ, ㄹ이다.